오관서원 조선왕조실록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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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 명신(名臣) 박상충(朴尙衷)의 서원(書院)을 송도(松都)에 세우도록 명하였다. 처음에 송시열(宋時烈)이 박상충의 일을 아뢰자, 임금이 증시(贈諡)하고 치제(致祭)하게 하였으며, 정몽주(鄭夢周)의 사우(祠宇)에 합향(合享)하도록 명하였다. 개성 유수(開城留守)가 그를 아울러 배향[配食]하는 것이 타당한지의 여부를 계품(啓稟)하니, 예조(禮曹)에서 복주(覆奏)하기를,
“정몽주는 동방(東方) 이학(理學)의 원조(元祖)로 인륜(人倫)의 사표(師表)가 되는데, 지금 박상충과 나란히 앉히는 것은 미안(未安)한 듯하며, 더러는 박상충이 정몽주와 함께 같은 세대에 태어나서 뜻이 같고 도(道)가 맞아 후학(後學)의 동떨어지게 다른 것과는 비교할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안치하여 배향하는 것은 역시 뜻에 맞지 않습니다. 청컨대 대신에게 의논하소서.”
하였다.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수흥(金壽興)·정지화(鄭知和)는 말하기를,
“따로 사우(祠宇)를 세워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하고, 좌의정(左議政) 민정중(閔鼎重)은 말하기를,
“지금 비록 같은 사우에 아울러 제사를 지낸다고 하더라도 자리가 상하(上下)로 나뉘어 있으니, 크게 불안(不安)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따로 사우(祠宇)를 지어 제사지내도록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8책 564면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풍속-예속(禮俗) / *역사-전사(前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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