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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의 뜨락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04-24 23:57 조회1,6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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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박씨(羅州朴氏) 시조 박병묵(朴炳黙)은 나주에 토착해온 사족(士族)의 후예로 고려에서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했고 충무(忠武)라고 시호(諡號)되었다. 그의 아들 박덕영(朴德瑛)은 호군(護軍)으로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졌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이 박병묵을 시조로 하고 나주(羅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잇게 되었다.> <반남박씨(潘南朴氏) 시조 박응주(朴應珠)는 고려조에서 반남호장(潘南戶長)을 역임했으며 6세손 박은(朴訔)이 조선 태종(太宗) 때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워 익대동덕좌명공신(翊戴同德佐命功臣)에 올라 반남군(潘南君)에 봉해졌다가 금천부원군(錦川府院君)에 봉해진 이후로 오랫동안 세거하게 되어 그 후손들이 박응주를 시조로 반남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상기 내용은 나주박씨와 반남박씨에 대한 네이버 지식사전에 나오는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한자 朴泰章 영어 음역 Park Taejang 분야 조선 유형 인물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시대/조선중기 집필자 고수연 유사검색어 성별 남자 생년 1636 몰년 미상 본관 나주(羅州) 자 중관(仲觀)|휘숙(輝叔) 아버지 박천구(朴天龜) 형 박태헌(朴泰獻) 아우 박태영(朴泰榮)|박태업(朴泰業)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중관(仲觀)이며, 휘숙(輝叔)이다. 아버지는 박천구(朴天龜)로 제릉(齊陵)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형 박태헌(朴泰獻)과 동생은 박태영(朴泰榮), 박태업(朴泰業)이 있다. [활동사항] 1666년(현종 7)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묘소] 『청주읍지(淸州邑誌)』에 의하면 박태장(朴泰章)의 묘는 서강외이면 신원(薪院)에 있다고 한다. 현재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사마방목(司馬榜目)』 • 『청주읍지(淸州邑誌)』(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청주시, 2003) 한자 朴志喜 영어 음역 Park Jihui 분야 조선 유형 인물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시대/조선후기 집필자 강민식 유사검색어 성별 남자 생년 1656 몰년 1739 본관 반남(潘南) 자 여우(汝雨) 아버지 박태장(朴泰章) 어머니 전주이씨(全州李氏) 아내 초계변씨(草溪卞氏) 아우 박이희(朴以喜)|박서희(朴瑞喜)|박시희(朴始喜)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여우(汝雨)이다. 청주 출신으로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초계변씨(草溪卞氏)이다. 청주에 처음 정착한 장연현감(長淵縣監) 박계달(朴季達)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안검(朴安儉), 할아버지는 제릉참봉(齊陵參奉)을 지낸 박천귀(朴天龜)이다. 아버지는 생원(生員) 박태장(朴泰章)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활동사항] 1713년(숙종 39) 계사(癸巳)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37인(人)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을 거쳐 노직(老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저술] 유고(遺稿) 1권이 있다. [묘소]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에 있다. [참고문헌] • 『문과방목(文科榜目)』 • 『반남박씨세보(潘南朴氏世譜)』(1981) 상기에서 박태장은 사마방목과 청주읍지를 참고하여 '본관 나주(羅州) '로하였으며 (가계)에도 "본관은 나주이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지희는 문과방목과 반남박씨세보를 참고로하여 '본관 반남(潘南) '으로 하고 (가계)에 "본관은 반남(潘南)이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인은 "역사적 자료의 기록은 그대로 보존하고"라고 하셨는바 아마도 상기의 기록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뜻으로 쓰신것으로 생각하시는것 같은데 그렇다면 위의 내용으로 보면 박태장은 디지탈 청주문화대전을 보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사람들이 사마방목에는 나주로 되어있지만 실제는 반남박씨라고 인정하겠습니까? 아니면 나주박씨로 알겠습니까. 저도 박지희를 우연하 찾아보니 부가 박태장으로 되어있어서 박태장이 반남박씨라는것을 인지 했는바, 현재 많은 성씨가 지명에 따라 변했으므로 (예를들면 대구-->달성, 광주-->광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도 족보등의 자료가 명화하여 객관성이 있다면 현재의 본관으로 수정을 해주고 있는 실정임을 많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사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박응주시조로 하고 있는 반남박씨임을 고려하면 아무리 사마방목이나 문과방목에 본관이 나주로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그역사적인 자료를 수정하자는것도(실제 수정할 수도없음) 아니며, 또한 예로는 김구의 호는 백범, 본명 창수, 아명 창암인바 백범 김구외에 아명인 김창암이나 본명 김창수를 아는 사람이 직계자손들 말고 과연 몇명이나 될까요? 과거의 본관이 나주였다는 사실은 후손들인 우리 반남박씨들만 알고 거의 아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덧붙이면 반남박씨를 아는사람도 그리 흔치를 않다는 것입니다.(박씨라면 밀양박씨냐 물어보고 반남박씨라면 그런 본관이 있는지 몰랐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였습니다.) 사마방목 등의 역사적 사료는 보존하되(당연히 보존됨) 평도공께 내려졌던 1683년 이전의 나주박씨는 가능하면 300여년을 사용하고있는 반남박씨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사료되어 장황하게 글을 드립니다. 공연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라면 넓은 아량으로 혜량하여 주시기 바라오며, 오랫동안 명문으로 이어져온 우리 반남박씨 문중어르신들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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