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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인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04-24 12:55 조회1,611회 댓글0건본문
그렇습니다. 반남박씨(현재)의 본관이 반남(밀직공) - 나주/금성(평도공) - 반남(계해보)으로 변한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자료에 나타난 기록을 깊은 연구/분석을 거치지 않은 채 성급하게 고치게 되면 나중에 그야말로 "진짜 진실"이 영원히 묻혀 버릴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태종 당시 나주목(羅州牧)의 임내(任內) 현(縣)들이 혁파되어 나주목으로 통합될 때 반남현이 나주목에 합해지면서 반성군(휘 은: 평도공)의 관향이 나주(羅州)(금성 錦城)로 개관되고 봉호 역시 금천군(금천=금성)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나주목의 임내현들이 혁파, 통합되면서 주읍(主邑)의 나주박씨(羅州朴氏), 압해현의 압해박씨, 복룡현의 복룡박씨, 종남향의 종남박씨(종의박씨?), 임성부곡의 임성박씨 등 당시 나주목의 여러 박씨들이 결과적으로 <나주박씨>로 개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위의 역사적 사실을 분석해 보면, 평도공께서 태종으로부터 내려받으신 관향 <나주>와 다른 박씨들의 관향 <나주>와는 그 성격과 배경에 있어서 서로 구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계해보 이후에도 일부 반남박씨 후손들은 평도공께서 태종으로부터 내려받으신 관향인 <나주>를 그대로 사용한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역사적 자료의 기록은 그대로 보존하고, 다만 그 기록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연구를 통해 올바른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 옳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역사적 기록 자체를 충분한 설명 없이 마음대로 고치거나 삭제하는 행위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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