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이 반남에서 나주로 , 또 반남으로 바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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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서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04-23 20:50 조회4,040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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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휘 박태장(朴泰章) 1636년생 족보(7-696) 상진-여항-인-지생-계달-사원-夢信(臣)-悌烈-안검--天龜--태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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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장(朴泰章) / 顯宗 07 式年 生員 》 【합격등위】 3등 0040 【본인성명】 박태장(朴泰章) 【본인 자】 휘숙(輝叔) 【본인생년】 병자(丙子) 1636 【본인본관】 나주(羅州) 박(朴) 【본인거주】 남원(南原) |
【본인구존】 구경하(具慶下) 【본인전력】 유학(幼學) 【부친성명】 박천구(朴天龜) 【부친품계】 봉렬대부(奉列大夫) 【부친관직】 제릉(齊陵)/전행참봉(前行參奉) 【안항(형)】 박태헌(朴泰獻) 【안항(제)】 박태영(朴泰榮), 박태업(朴泰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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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휘 朴志喜 1656년생 족보(7-696) 상진-여항-인-지생-계달-사원-몽린-제열-안검-천귀-태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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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희(朴志喜) 숙종(肅宗)39년(1713년), 증광시(增廣試) 병과37(丙科37) 생년(生年) 1656년, 병신 자(字) 여우(汝雨) 본관(本貫) 반남(潘南) |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부(父) 박태장(朴泰章) 조부(祖父) 박천귀(朴天龜) 전력(前歷) 유학(幼學) 관직(官職) 전적&(典籍&) |
반남박씨는 시조 호장공
박응주가 고려 고종 때 반남 호장을 지냈기에 관향(貫鄕)을 반남(潘南)으로 삼았으나
조선 태종 12년에 반남이 나주의 속현(屬縣)이 되므로
태종이 ‘반성군(潘城君) 박은(朴訔)의 본향(本鄕)을 나주(羅州)로 내려 주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24권, 12년(1412 임진 / 명 영락(永樂) 10년) 12월 13일(갑자) 3번째기사
반성군 박은의 본향을 나주로 정해 주다
반성군(潘城君) 박은(朴訔)의 본향(本鄕)을 나주(羅州)로 내려 주었다. 박은은 본래 나주 임내(任內) 반남현(潘南縣) 사람인데, 이제 예(例)에 따라 임내(任內)를 혁파(革罷)하여 나주에 합치었으므로, 이같은 명이 있었으니 박은의 청을 따름이었다. 뒤에 금천군(錦川君)으로 고쳐 봉(封)하였다.
태종 12년 이후에는 관향을 나주로 삼아 지내 왔으나
230년이 지난 숙종 9년 (1683년) 제2차 세보 계해보 발간시 개칭한 이유가
“조선조에 이르러 행정구역이 나주에 병합된 관계로 나주로 칭하였으나,
나주에 속한 지명을 본관으로 삼는 박씨는
반남에 사는 박씨외 , 압해에 사는 박씨, 종의에 사는 박씨, 임성에 사는 박씨 모두가 나주 박씨라고 하면 혼동이 될 우려가 있는 고로 우리는 반남박씨라고 칭하였다.”
이후부터는 나주의 관향을 반남의 관향으로 바꾸게 되었다.
박태장은 5세 문정공 박상충의 아우 판서공 상진의 후손으로 .
박태장이 사마시에 합격한 현종 7년(1666년)은 서계공이 계해보 발간(1683년) 이전이기에 나주를 본관으로 하였으나
아들 박지희가 과거시험에 급제한 숙종 39년(1713년)은 계해보가 발간후 이기에 반남박씨로 기제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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