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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 떠난 지 5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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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3-14 11:45 조회4,8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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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 떠난 지 50일… "당신이 좋아하던 와인 올립니다"

포근한 3월의 햇살이 차가운 묘지를 스몄다. 발치에는 먼저 간 아들이, 오른편엔 남편이 누워 있었다.

소설가 고(故) 박완서(1931~2011)의 50재(齋) 추모식이 12일 경기도 용인 천주교공원묘지에서 열렸다. 장녀 호원숙(57)씨는 "불교식 49재로는 11일이지만, 돌아가신 지 50일째인 오늘 천주교식으로 미사를 드린다"고 했다. 1984년 고인에게 세례를 준 김자문 신부가 이날 미사를 집전했다. 신부는 고인을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한 뒤 작가가 산문집 '한 말씀만 하소서'에 썼던 글을 인용했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같은 해에 떠나보내는 비극을 겪은 뒤의 고백이다.

고(故) 박완서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50일째인 12일 유족과 문인들이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나의 홀로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간 남편과 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 좋은 추억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설사 홀로 섰다고 해도 그건 허세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요즈음 들어 그건 어렴풋하고도 분명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이런 도움이야말로 신의 자비하신 숨결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미사가 끝난 뒤 네 딸과 사위, 그리고 손자들은 준비해온 음식과 술을 올리고 나눴다. 아버지에게는 소주를, 어머니에게는 와인을, 동생의 묘에는 맥주를 뿌렸다. 기호와 취향대로다. 개성 출신인 고인은 생전에도 기일과 명절마다 묘지를 찾아 추모한 뒤 음식을 나눴다고 했다. 이날 고기전, 만두, 산적, 빈대떡, 흑임자떡이 준비됐다. 후배 문인들은 "선생님이 주시는 음식"이라며 기꺼이 받고 음복했다. 작가 오정희 이경자 은희경, 시인 문병일 이병률이 잔을 받았다. 또 고인의 책을 펴냈던 현대문학 양숙진 대표, 세계사 최선호 회장, 문학동네 강태형 사장도 함께했다.

등단작 '나목'(裸木)처럼 세상을 떠난 뒤에도 고인은 자신의 잎과 살들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었다.


용서하세요 

- 고 박완서 선생님의 49재를 모시며 

                              이 병 률  

용서하세요
참 아름다웠습니다 
죽도록 일을 하느라 허리를 펴지 못하는 이도
시간이 되면 돌아갑니다
붓으로 물을 찍어 땅바닥에 글씨를 쓰는 이도
시간이 차면 돌아갑니다
그 돌아오는 시간들 모두를 두 손 모아 지키고 서 있던 당신
당신은 웃는 것만으로 얼마나 멀리 환했던가요
이 세상, 이 밝음, 그리고 저 달까지도 비추었던가요

오늘도 집에 돌아오는 길
당신 방의 불빛이 보이지 않아 슬퍼했음을 용서하세요
덮어주세요 어젯밤에도 그리 파도가 높았음을
갈라진 마음을 앓느라 잠 못 이루는 이웃을 두었음을 

 
꽃이 피고 있다고 전할 길 없는 이 막막함들
그리하여 피고 지는 난망들을 용서하세요  

견디기에는 어떤 시간이었습니까
사랑하기에 넘치는 시간이었습니까
그래도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당신이 당신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낮출 때마다
우리가 길길이 어깨를 높였던 것과
일일이 우리를 씻기고 핥아 가르친 사랑의 인사에도
사랑한다 번번이 답하지 못한 미욱함까지를  
 
지나겠습니다 용서하세요
잊지 않겠습니다 용서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영원할 수 없음까지도
부디 원통히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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