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贊京 族叔任께 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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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세화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3-08 23:11 조회4,1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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贊京 族叔任께 答 합니다.

먼저 건강 하시지도 못한 아저씨께 마음 상하고 신경 쓰이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작금의 사태는, 누구의 잘 잘못을 떠나 서로가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잘했다고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며 삼가 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족보의 후손을 기록하는 것은 어느 개인의 사정에 의함이 있어서는 않 되는 것이며, 옛 先祖님들의 記錄은 所重하고 건드릴 수 없는 禁忌事項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제 所信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저 漢雨의 이름자가 庚申譜에 記錄되지 않은 漏譜子라 論할 資格이 없다고 하셨는데, 저의 家系를 잘 알고 계시면서,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벗어나 인격논쟁으로 번지어 감정에 치우치게 되고, 본질이 전도되니 제발 더는 거론하지 마시고, 받아드린 수단이 확실한 후손인지의 여부만 판정하면 된다고 봅니다. 이 事案은 족숙님만 해당되는 것 은 아니며, 옳다고 판정한 족보편찬 심사위원장님과 심사위원 여러분도 대답이 있어야 하실 것입니다.

漢雨의 家系는 이러 합니다.

庚申譜 1券 377쪽에 보면 諱 世字 周字로 시작하여 저의 先考이신 贊字 熙字까지만 기록되고, 그 아래에 있어야 하는 한우는 없습니다. 저의 자격을 말한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글을 올릴 때, 왜 경신보의 수단 때도 빠졌는지 써 내려 갔으나 구구한 것 같아서 삭제하고 말았더니 결국 간략하게나마 여러분이 알기 쉽게 설명하지 않을 수 없군요.

諱 世字周字 할아버지께선 諱 泰翊(同敦寧)이신 큰아드님과 작은 아드님인 諱 泰慶이 계시니, 큰 아드님의 후손은 왜정 시대까지 연천 근방에 사셨던 것 같은데, 오늘에 와서는 그 소식을 알 수 가 없고, 둘째분의 자손은 오늘에 있어 몇 댁만 주소지를 알 수 있으니 서로의 선대가 멀기 때문에 다른 댁들과는 연락이 닫지 않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집은 나의 8代 祖 되시는 분인 正祖의 命을 받아 度支志와 秋官志를 編纂하신 諱 一源(僉樞公)으로부터 祖考 이신 諱 永緖까지 獨子로 내려와 집안이 단촐 하며, 거기에 動亂때에는 서울 복판에 살아 다섯 어른들이 한꺼번에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宗孫으로 門中의 奉祀와 제반 문제를 살피시던 할아버지께서 미쳐 후손들에게 가르치심도 주지 못하시고 타계하시니, 그 때는 겨울 피난도 떠나지 않은 때로, 30대의 어머니 손에 어린 4남매가 걸어서 눈보라 치는 남태령 고개를 넘을 때 의 생각이 지금도 뚜렷한데, 戊戌譜때는 都有司셨던 勝勳 大夫께서 사람을 보내시어 수단을 재촉 하셨으나 생활이 어렵다며 어머님이 포기하셨고, 庚申譜때는 족보편찬 사실을 늦게 서야 알게 되어 수단을 올리지 못 하였으므로, 비록 한우의 이름이 족보에는 없다 하여도 틀림없는 活塘公의 後孫이며 이는 戶籍이 證憑하는바입니다.

그러므로 활당공 셋째집 일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활당공파 소종의 감사자격으로서 이번의 수단을 받음에, 몇 건에 대한 부당성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말 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뿐이니 그 외의 것은 論함을 사양 합니다.

贈 參判公 諱 世周 候 漢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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