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뿌리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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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원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01-05 14:04 조회4,439회 댓글0건본문
경신보 세적편 첫머리에 보면 <신라(新羅) 시조왕(始祖王) 사실(事實)>(바로 뒤의 <음기(陰記)> 포함)이란 글이 버티고 있다. 물론 반남박씨 최초의 인물로 기록에 남아있는 1세 호장공(휘 應珠)께서, 비록 그 선대 계보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이 분명하므로 대한민국 모든 박씨(朴氏)의 비조(鼻祖)로 인정되는 혁거세 시조왕에 관한 기록이 맨 첫머리에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반남박씨 15만 종인들 중에서 그 기록을 읽어본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야말로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내용이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반남박씨,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박씨의 비조인 혁거세의 어머니는 중국 제실(帝室)의 딸 사소(娑蘇)(또는 파소 婆蘇)"라는 것이다. (즉 사소(파소)가 바로 혁거세를 낳은 선도성모(仙桃聖母)라는 주장). 중국 황제의 딸인 사소가 "남편도 없이 잉태를 해서 사람들의 의심을 받게 되자 바다를 건너 진한에 가서 아이를 낳아 해동의 시왕(始王)이 되게 하였"으니 이 시왕(始王)이 바로 박혁거세라는 내용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처음이 아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역사서 <삼국사기>에도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혁거세 시조왕의 탄생 신화를 철저하게 왜곡, 날조했다는 것이다. 사대(事大) 중화주의(中華主義)에 매몰되어 있었던 과거 이 땅의 유학자들이 분별 없이 받아들인 이야기이다. 한 마디로, 모화사상(慕華思想)의 극치라 할 것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였던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그의 <필원잡기>에서 이 사소(또는 파소)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중국측의 오인(誤認)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모화사상(중국의 문물 제도를 흠모하고 따르려는 사상)에 함몰된 조선의 유학자들은 서거정의 의심을 무시한 채 중국에서 지어낸 이 이야기를 마치 "사실(事實)"인 것처럼 후손들에게 주입시켜 왔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어이없는 이야기가 20세기 후반에 편찬한 경신보 세적편 첫머리에 등장하였을까? 경신보 편찬에 참여하신 어르신들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신 것일까? 우리로 하여금 중국 황실(제실)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시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올려 놓으신 것일까? 그것도 제목에 "사실(事實)"이라는 말까지 붙여서!!!
새로운 세보가 편찬된다고 한다. 이번에도 우리 모두를 사소(또는 파소)의 후손들로 만들 것인가? 혁거세 신라 시조왕을, 아버지 없이 잉태된 중국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 새로운 세보 편찬에 관여하시는 분들께서는 뚜렷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이 물음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제시하셔야 할 것이다. 그 무슨 "전통" 운운하시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시는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태도는 보이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보(족보)도 역사(歷史)다. 역사의식이 없는 세보(족보)는 영혼이 없는 빈 껍데기일 뿐이다. 우리의 뿌리는 어디인가? 중국인가, 한국인가?
문제는 그 내용이다. 반남박씨 15만 종인들 중에서 그 기록을 읽어본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야말로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내용이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반남박씨,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박씨의 비조인 혁거세의 어머니는 중국 제실(帝室)의 딸 사소(娑蘇)(또는 파소 婆蘇)"라는 것이다. (즉 사소(파소)가 바로 혁거세를 낳은 선도성모(仙桃聖母)라는 주장). 중국 황제의 딸인 사소가 "남편도 없이 잉태를 해서 사람들의 의심을 받게 되자 바다를 건너 진한에 가서 아이를 낳아 해동의 시왕(始王)이 되게 하였"으니 이 시왕(始王)이 바로 박혁거세라는 내용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처음이 아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역사서 <삼국사기>에도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혁거세 시조왕의 탄생 신화를 철저하게 왜곡, 날조했다는 것이다. 사대(事大) 중화주의(中華主義)에 매몰되어 있었던 과거 이 땅의 유학자들이 분별 없이 받아들인 이야기이다. 한 마디로, 모화사상(慕華思想)의 극치라 할 것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였던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그의 <필원잡기>에서 이 사소(또는 파소)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중국측의 오인(誤認)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모화사상(중국의 문물 제도를 흠모하고 따르려는 사상)에 함몰된 조선의 유학자들은 서거정의 의심을 무시한 채 중국에서 지어낸 이 이야기를 마치 "사실(事實)"인 것처럼 후손들에게 주입시켜 왔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어이없는 이야기가 20세기 후반에 편찬한 경신보 세적편 첫머리에 등장하였을까? 경신보 편찬에 참여하신 어르신들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신 것일까? 우리로 하여금 중국 황실(제실)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시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올려 놓으신 것일까? 그것도 제목에 "사실(事實)"이라는 말까지 붙여서!!!
새로운 세보가 편찬된다고 한다. 이번에도 우리 모두를 사소(또는 파소)의 후손들로 만들 것인가? 혁거세 신라 시조왕을, 아버지 없이 잉태된 중국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 새로운 세보 편찬에 관여하시는 분들께서는 뚜렷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이 물음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제시하셔야 할 것이다. 그 무슨 "전통" 운운하시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시는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태도는 보이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보(족보)도 역사(歷史)다. 역사의식이 없는 세보(족보)는 영혼이 없는 빈 껍데기일 뿐이다. 우리의 뿌리는 어디인가? 중국인가, 한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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