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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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인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01-04 17:35 조회4,388회 댓글0건본문
상로재(霜露齋)에 대한 깊은 연구 결과를 게시판에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간단히 요약하면,
(1) 石泉庵은 6세 평도공(휘 은)께서 시조 호장공(휘 응주)과 3세 참의공(휘 윤무) 묘역의 수호ㆍ 유지ㆍ 관리를 위해 창건하셨고,
(2) 霜露齋는 18세 학생공(휘 사신)께서 증조부이신 15세 찬성공(휘 세해)의 재실로 건립하셨으나 찬성공의 묘소가 선영 안에 있고 상로재도 석천암의 터에 자리 잡았으므로 소종중의 사당으로만 사용할 수가 없어 결국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종중에서 총괄하게 되었다.
추가 의문:
석천암도 원래 분암, 즉 일종의 재궁(齋宮)으로 창건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현재 재궁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요?
<시조 묘역의 수호ㆍ 유지ㆍ 관리>
석천암의 중건, 재건, 시조 묘역의 유지ㆍ관리, 위토 조성, 그리고 상로재의 창건, 중수 등과 관련하여 13세 남곽공(휘 동열), 15세 찬성공(휘 세해), 18세 학생공(휘 사신)께서 기울이신 노력은 정말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아울러 그 동안 부근에서 지속적으로 시조묘역의 수호에 성심을 다하신 나주 종중(찬성공 후손)에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결국 간단히 요약하면,
(1) 石泉庵은 6세 평도공(휘 은)께서 시조 호장공(휘 응주)과 3세 참의공(휘 윤무) 묘역의 수호ㆍ 유지ㆍ 관리를 위해 창건하셨고,
(2) 霜露齋는 18세 학생공(휘 사신)께서 증조부이신 15세 찬성공(휘 세해)의 재실로 건립하셨으나 찬성공의 묘소가 선영 안에 있고 상로재도 석천암의 터에 자리 잡았으므로 소종중의 사당으로만 사용할 수가 없어 결국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종중에서 총괄하게 되었다.
추가 의문:
석천암도 원래 분암, 즉 일종의 재궁(齋宮)으로 창건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현재 재궁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요?
<시조 묘역의 수호ㆍ 유지ㆍ 관리>
석천암의 중건, 재건, 시조 묘역의 유지ㆍ관리, 위토 조성, 그리고 상로재의 창건, 중수 등과 관련하여 13세 남곽공(휘 동열), 15세 찬성공(휘 세해), 18세 학생공(휘 사신)께서 기울이신 노력은 정말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아울러 그 동안 부근에서 지속적으로 시조묘역의 수호에 성심을 다하신 나주 종중(찬성공 후손)에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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