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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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원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01-04 14:47 조회3,850회 댓글0건본문
관리자께서 게시판에 올려 놓으신 <선조(先祖) 호장공(戶長公) 사적(事蹟)>이라는 글 속에는 마치 휘 도원(道源) 할아버님께서 호장공 묘역의 분암을 세우시고 그 이름을 "석천암(石泉庵)"이라고 하신 것처럼 되어 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다. 다음은 관리자께서 게시판에 올려 놓으신 <선조(先祖) 호장공(戶長公) 사적(事積)>이다. 아마도 이 글은 경신보 세적편에 올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조(先祖) 호장공(戶長公) 사적(事蹟)
휘(諱) 응주(應珠)의 묘는 나주(羅州)의 옛 반남현(潘南縣) 봉현(蜂峴)【암석에 ‘봉현’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갑좌(甲坐)의 언덕에 있다. 원래 표석(表石)이 있었으니 바로 12세손인 동열(東說)이 본주(本州)의 수령으로 재임할 때 세운 것으로 오래되어 글자가 모호하게 되었다. 숙종 35년 기축년(1709)에 16세손인 필명(弼明)이 본도(本道)에 안찰사로 왔을 때 다시 새 표석을 세우고 옛비석은 공의 손자 진사공(進士公)의 묘 바깥 계단 서쪽에 묻었다. 그리고 영조 38년 임오년(1763)에 18세손인 도원(道源)이 본도에 안찰사로 왔을 때 다시 상석(床石)과 망주(望柱)를 갈아세우고 분암(墳庵)을 두었는데 이름을 석천암(石泉庵)이라 하였다. 옛적 호장공(戶長公)의 도장과 이것을 금호(禁護)하라는 경종(景宗)의 명령서가 이 암자에 보존되었다가 영조 기미년에 화재로 모두 소실되고 신유년에 암자를 중건했는데 예조에서 내린 허가문서가 있다.>
위의 글은 "호장공의 사적(事蹟)"이라기 보다는 호장공의 묘소를 수호, 보존하기 위한 후손들의 노력을 피력한 글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호장공에 대해서는 고려 중후기에 호장(戶長)을 지내셨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으므로 드러낼 만한 "사적(事蹟)"이란 것이 전해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호장공 사적>에는 위에서 언급한 어처구니없는 오류가 나타난다. 어느 분이 이 <호장공 사적>을 작성하여 세적편에 올리셨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착오가 있었거나 아니면 원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위의 <호장공 사적> 번역문(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영조 38년 임오년(1763)에 18세손인 도원(道源)이 본도에 안찰사로 왔을 때 다시 상석(床石)과 망주(望柱)를 갈아세우고 분암(墳庵)을 두었는데 이름을 석천암(石泉庵)이라 하였다 .....>
위의 문장을 보면, 휘 도원(道源) 할아버님께서 전라감사로 부임하셨을 때 (1) 상석과 망주를 갈아세우시고, (2) 분암을 두시고 그 이름을 석천암이라 하신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1)은 사실이지만, (2)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2)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 자료에서 증명되고 있다. (아래 "두 가지 자료: 석천암 창건" 참조).
그렇다면 왜 이런 어이 없는 오류가 발생하였을까? 자료를 조사해 보니, 위의 <호장공 사적>의 원문은 아마도 20세기 후반에 와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근거는 세보의 호장공 방주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세보에 나오는 호장공의 방주 원문을 잘못 옮겼거나 아니면 오역(誤譯)을 했다는 것이다. 세보의 호장공 방주를 살펴보니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영조 38년 임오년(1763)에 18세손인 도원(道源)이 본도에 관찰사로 왔을 때 다시 상석(床石)과 망주(望柱)를 갈아세웠다. (여기서 끊음). 묘소를 수호하는 암자[분암(墳庵)]가 있는데 이름은 석천(石泉)[암(庵)]이며 옛날 호장인(戶長印)과 경종(景宗)이 내린 금호수교(禁護受敎: 묘지 수호 전교)가 암자[석천암]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즉 원문의 내용에 따르면, 휘 도원 할아버지께서 하신 일은 상석과 망주를 갈아세우신 것이고, 석천암 관련 부분은 별도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두 사람의 부주의한 실수가 역사를 바꾸어 버릴 수도 있다는 또 하나의 예를 보는 것 같다. 이 예를 거울 삼아, 현재 종중의 일을 맡아 보시는 분들께서도 이런저런 문제에 대한 책임을 앞 사람이나 다른 종인들에게 미루실 것이 아니라(현재 그렇다는 뜻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람),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시고 세밀히 살피셔서 왜곡된 역사가 후손들에게 내려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다.
(외람된 말씀이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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