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45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244

자유게시판

몇 가지 모호한 점들

페이지 정보

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1-01 13:28 조회4,237회 댓글0건

본문

 

종원님의 이러한 질문이 종중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많은 도움에 됩니다.

많은 분들이 모르고 있던 일, 잘못 알고 있는 일들을 종원님의 의문으로 하나 하나 풀어가고 있으며

종원님의 질문에 확실하고 명확한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 의문만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1>질문

그런데 관리자님께서 올리신 글 속에는 마치 도원 선조께서 분암을 세우시고 석천암이라고 부르신 것처럼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올린 글을 면밀히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제 말씀은 상석과 망주에 관한 것이 아니고 분암을 세운 시기와 그 이름에 관한 것입니다).



(1)답

관리자가 올린 글은 세적편의 원문을 그대로 올린글입니다.

墳庵은 평도공께서 전라도 관찰사로 계신 1406년 으로 추정을 하고 (평도공은 1406년에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시고 그해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명칭은 그 때부터 석천암이라고 했는지, 그후에 석천암이라고 했는지는 뚜렸한 기록이 없습니다.

언제부터 석천암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세적편에는 없습니다

평도공이 분암을 세우고

분암을 평도공이 석천암이라고 한 기록도 세적편에는 없습니다.

“18세손인 도원(道源)이 본도에 안찰사로 왔을 때 다시 상석(床石)과 망주(望柱)를 갈아세우고 분암(墳庵)을 두었는데 이름을 석천암(石泉庵)이라 하였다..”

위의 문구를 홈페이지 관리자 개인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연구를 못했고

이러한 문제는 여러 한학자, 역사학자등이 모여서 검토,토의 한후 결론이 나온것을 공식화 해야지 개인의 의사는 금물입니다.



<3> 질문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기록을 현재까지도 그냥 그대로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3) 답

현재 반남박씨 편람 족보의 세적편, 족보의 자손록에 오류 부분을 정리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기록을 현재까지도 그냥 그대로 두고 있었냐 하시는데, 그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기힘드네요

좋은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辛卯年 元旦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