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45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244

자유게시판

[허연의 명저 산책] 박지원`열하일기`

페이지 정보

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12-11 10:14 조회5,225회 댓글0건

본문

"인생이란 본시 아무런 의탁함이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 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어두운 조선 중세시대 근대의 빛을 던졌던 유쾌한 청나라 유람기

기사입력 2010.12.10 14:11:18 | 최종수정 2010.12.10 19:26:54

"멀리 앞길을 헤어볼 때 무더위가 사람을 찌는 듯하고, 돌이켜 고향을 생각할 때는 구름과 산이 막혀 아득한지라 사람의 정리도 이럴 때는 느닷없이 떠오르는 후회가 없지 않을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1780년 청나라로 가는 사절단 수행원 자격으로 압록강을 건넌다. 그는 강 건너편 조국을 돌아보며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먼 길의 첫발을 내디뎠다.

세계사적 격변 와중에서도 앞뒤 꽉 막힌 채 중세를 살고 있던 조선에 한 줄기 빛을 던져준 책 `열하일기(熱河日記)`는 그렇게 탄생했다. `열하일기`는 그해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에 걸친 여행 기록이다. 연암이 거쳐간 길은 압록강에서 연경(베이징)까지, 다시 연경에서 열하(지금의 허베이성 청더)까지 3000리에 이른다.

사절단 목적은 청나라 건륭제 고희연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행이 연경에 도착했지만 건륭제는 그곳에 없었다. 여름궁전인 열하의 피서산장으로 옮겨간 건륭제를 따라 사절단은 다시 연경에서 북쪽으로 210㎞ 떨어진 열하로 향한다. 덕분에 연암은 중국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지식인으로서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당시 연경과 열하는 동아시아 최고 국제도시였다. 종교와 민족이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모습, 새로운 기술과 문물을 보며 연암은 조국을 떠올린다. 그가 떠올린 조국은 아직도 명나라 사상적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근대 사회였다. 열하에서 코끼리를 본 그는 성리학적 전통을 은근히 비꼰다.

"세상에 털끝같이 작은 물건도 모두 하늘이 내지 않은 것이 없다고들 한다. 하늘을 형체로는 천(天)이요, 기능으로는 상제(上帝)요, 묘하기로는 신이라고 말하는데…그 호칭이 너무 난잡하다…나는 대체 모르겠다. 컴컴한 하늘에서 과연 어떤 물건을 만들었다는 것인가."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북학파 중심 인물이었던 그는 발달된 청나라 수레를 보고는 통탄을 금치 못하고 이렇게 적는다.

"우리 조선에도 수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바퀴가 완전히 둥글지 못하고 바퀴 자국이 궤도에 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수레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에는 산과 계곡이 많아 수레가 적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나라에서 수레를 이용하지 않다 보니 길을 닦지 않는 것이다. 수레만 쓰면 길은 저절로 닦일 것이 아닌가. 사방 몇 천리가 되는 나라 백성들이 이다지도 가난한 까닭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수레가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열하일기`는 전체 12책으로 구성돼 있다. `도강록`에서 시작해 마지막 `동란섭필`까지 어떻게 이런 것까지 다 기록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치밀하게 여행 과정이 정리돼 있다. 역사와 지리, 풍속, 건축, 의학, 인물, 정치와 사회, 종교, 천문, 병사, 요리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은 분야가 없다.

문체 또한 다채롭다. 연암은 과감하게 소설적 문체를 차용했고, 평민들이 사용하던 농담이나 속담도 그대로 담는 파격을 감행했다. 풍자와 해학 또한 `열하일기`를 빛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살아서 큰 영화를 누리지 못했기에 그의 글쓰기는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었다. 때로는 건조하면서도 때로는 감상적인 일성을 내지르는 그의 글은 감수성 측면에서도 훌륭하다. 거대한 요동 평원에서 그는 이렇게 외친다.

"인생이란 본시 아무런 의탁함이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 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는다.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 만하구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