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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욱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10-10 20:02 조회1,668회 댓글0건본문
"推定"이라는 말만 나와도, 노여워 하시는 종원들께 무슨 더 이상의 드릴 말씀이 있겠습니까? 오늘도 하루종일 "錦城郡誌"와 "羅州郡誌"를 탐색하여 보았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潘南郡(縣)誌"는 자료 자체를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짧은 기간이나마 저를 아껴 주시고, (한 번도 화를 내시지 않고) 차분하게 설득하시는 승학 종인님께 무한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며칠간의 집중적인 탐구결과 제 생각에 다소 변화가 생겼습니다. 고려사 전반을 조감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고, 潘南朴氏 문중이 고려조에는 생각만큼 명문가문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官撰書의 대표라 할 수 있는 高麗史, 高麗史 節要 등에 나타나는 우리 潘南朴의 比重은 그야 말로 零에 가깝다는 사실입니다. 상기 高麗史書에 자주 등장하는 엄청난 문벌귀족들에 전혀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조선조에 215명의 文科及第者와 7명(8명: 總理大臣 朴政陽 아저씨를 포함하면)의 相臣을 배출한 명문거족의 집안이었다는 것은 차라리 "奇積"에 가까운 일입니다. 宣傳官公(諱 文璨) 어른의 기록이 고의적으로 왜곡된 내용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그 어르신이 良識이 있는 분이었을 것으로 믿고 습니다. 결정적이고 귀중한 "證擧資料"를 잃어 버리신 그 분의 애통함이 충분히 가슴에 와 닿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어르신의 眞心을 우리 반남박씨 대종중의 宗論으로 承認해 주셨으면 합니다. 각설하고, 저의 "뿌리 찾기 운동"은 여기까지입니다. 승학 형님 안녕히 계십시요. 그 동안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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