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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환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10-01 13:13 조회1,689회 댓글0건본문
이에 잘못된 위와같은 내용을
진주의 춘당공파 찬덕씨의 제의로
판관공파 흥양씨, 군수공파 찬혁씨, 남곽공파 은서씨 등이 밀양으로 전주로 다니면서 밀양박씨측과 협의하여
밀양박씨 측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이사 157명이 만장일치로 토의한 결과
‘귀종회의 시정요청의 건 밀양박씨 대종회 이사회(2004.10.5) 결의에 따라 본종회에서도 앞으로 보첩간행시에 之吉 下에 朴應珠(戶長公)을 등재하지 아니할것을 약속합니다’ 라는 공문을 보내왔고 (사진 1)
후에 간행된 족보에 之吉 下에 朴應珠(戶長公)을 등재하지않은 족보를 간행한것을 확인했다.(사진 2)
---> 이미 결정 난 일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도 동 시대를 사는 못난 자손인 것 같아 위에 대한 논쟁에는 관심조차 없지만,.,,이미 기록되어 있는 족보조차 등재하지 않게 한 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위의 글에 대해 할말이 많지만 생략하렵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요지입니다만,,
오늘 아침 저는 제 가까운 친척을 알려고 - 실은 대한광복회 총사이신 고헌선생- 족보를 보다가 깜짝 놀랄 만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잘 믿기 힘든 일이지만 직접 확인하고 보니 새삼 불가사의 한 일도 다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학에 관심이 많아 그 쪽 직장(주로 대학 학사 DB관련 쪽과 안동 고산 서원 고도서 관련)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다 현재는 몸이 안 좋아 휴직중입니다. 조금 흥분한 상태로 기록합니다만 언젠가 여기 위의 내용 같은 걸 읽은 기억이 있기에 반남 박씨가 밀성 박씨(밀양박씨) 자손이 아니라는 식으로 아마도 조선 중,후기??부턴가 부전 내지는 실존이라하여 기록한 것을 유래에서 언듯 보았습니다.
시간이 바빠 골자만 얘기하렵니다. 가까운 친척을 찾아보다가 괴천선생(조선 중기 주역의 대가,당세 학자들로부터 고려 때 역학의 대가였던 역동선생易東先生우탁에 비견하여 역남선생易南先生의 칭호를 받음)의 종손을 찾아 보려는 데 저와 동시대를 살면서 내가 거의 고조부 뻘이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어떻게 5~6대조 자손 끼리 고조부 뻘이나 항렬이 차이가 나는 지 의아했지만 그게 사실이 되고 보니 문득 위의 반남 박씨가 밀박의 후손이 아니라는 반남 박씨의 족보를 우연히 보았던 게 (반박내용)생각이 나서 여기 이렇게 찾아와 글 올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신기한 게 많다는 걸 또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반남 박씨에 고려 말인가 벌명당에 묘를 쓰고 그 후로 ( 그 명당이 벌떼처럼 자손이 창성한다는 명당)반남 박씨가 조선시대에 번창했다는 것을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제가 존경하는 선조 중에도 실전하는 고려 때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고려 인종조 때 문과에 급제하신 諱 義臣( 후에 관직이 공부상서에 올랐다 족보상 반남박씨 자손 諱 應珠는 이분의 바로 5대손 입니다))의 자손입니다. 물론 오래 전부터 반남 박씨가 저에게는 모두 그 분의 자손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이구요. 제 말에 또 다른 근거를 제시 하시겠기에,,,위에 내용은 얼핏 보고도 무슨 의미 인지도 압니다만,,,논쟁은 끝없는 논쟁을 불러올 뿐,, 위와 같은 경우가 가끔은 일어날 수 있다는...모두 박혁거세의 자손이 아닐까해서요..이런 논쟁에 별관심은 없지만 동시대 고조부뻘 나는 세대차이 갖고 같은 자손이 아니라는 식으로 몰아 붙이는 것 같아 가슴 아팠습니다. 벌명당의 후손이라면 창성했을 터이고 얼마든 지 같은 항렬이라도 저의 친척처럼 동시대에 4~5대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만 기재하고 저는 이만 물러 갑니다. 내내 가문이 번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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