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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평도공이 간행한 '신간표제공자가어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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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9-17 08:51 조회5,5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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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표제공자가어구해(新刊標題孔子家語句解)

공자가 당시의 공경사대부 및 72명의 제자들과 문답한 것 중 『논어』에 편입된 것을 제외하고 여러 서적을 모아 기록한 것에 원나라 왕광모가 각 장별로 제목을 달고 자세하게 풀이한 것을 붙인 것으로 박은이 강릉감영에서 간행하였다. 박은(1370∼1422)은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 7년(1398)의 제1차 왕자의 난과 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이 책은 박은이 강원도도관찰출척사로 임명받고 부임하였을 때 이 책이 우리나라에 간행되어 있지 않음을 알고 그곳에서 번각(飜刻:한번 새긴 책판 등을 본보기로 삼아 다시 새김)해 낸 것이다.

이 책판은 조선 전기의 지방관이 주도하여 만든 판본으로서는 비교적 정교하여 조선 전기 출판문화사 연구에 필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본서(本書)는 공자(孔子)가 당시의 공경사대부(公卿士大夫) 및 칠십이제자(七十二弟子)들과 상대(相對)하여 문답(問答)한 것 중 논어(論語)에 편입(編入)된 것을 제외하고 집록(集錄)한 것에 원(元)나라 왕광모(王廣謀)가 각장별(各章別)로 표제(標題)하고 소상하게 구해(口解)를 붙인 것이다.

권말(卷末)에 부각(附刻)한 ‘신간소왕사기(新刊素王事記)’의 목록(目錄) 끝에 표시한 ‘태정갑자추창암서원간행(泰定甲子秋蒼巖書院刊行) ’의 기록(記錄)과 위의 간기(刊記)를 아울러 고려할 때, 원(元)나라 태정원년(泰定元年)(1324) 창암서원(蒼巖書院)에서 간행(刊行)한 원판본(元板本)을 수입(輸入)하여 태종(太宗)2년(1402) 강릉감영(江陵監營)에서 번각(飜刻)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간행자(刊行者)인 박은(恭愍王19∼세종(世宗)4, 1370∼1422)은 고려말기의 유학자(儒學者)인 박상충(朴尙衷)(충숙왕복위(忠肅王復位)1∼우왕(禑王)1, 1332∼1375)의 아들이다. 그는 조선건국후(朝鮮建國後) 태조(太祖)7년(1398)의 제1차 왕자난(王子亂)과 정종(定宗)2년(1400)의 제2차 왕자난(王子亂)때 태종(太宗)을 도와 공(功)을 세웠으며 태종(太宗)이 즉위(卽位)하자 좌명공신(佐命功臣) 삼등(三等)으로 포훈(褒勳)되고 강원도도관찰출척사(江原道都觀察黜陟使)로 제수(除授)되어 임지(任地)로 부임(赴任)하였는데, 이때 본서(本書)가 우리나라에서 간행(刊行)되지 않았음을 알고 그곳에서 번각(飜刻)해 낸 것에 해당(該當)한다.

고정(藁精)이 많이 섞인 조잡한 저지(楮紙)를 사용하여 찍어냈지만, 조선조초기(朝鮮朝初期)의 지방관판본(地方官板本)으로서는 비교적(比較的) 정교(精巧)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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