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반남박씨의 世系 와 沿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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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우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08-31 20:01 조회3,767회 댓글0건본문
花庄 潘南朴氏의 世系와 沿革
鼻祖(비조)는 新羅(신라)始祖(시조)인 朴赫居世(박혁거세)라 一世(일세)諱(휘)는 應珠(응주)이니 高麗(고려)戶長(호장)인데 潘南(반남)으로 始籍(시적)하니 潘南縣(반남현)이라
본래는 百濟(백제)의 半奈尖里縣인데 新羅(신라)는 潘南郡(반남군)으로 改名(개명)하고 高麗는 縣(현)으로 改稱(개칭) 하였다가 李朝(이조)때는 面(면)으로 格下(격하)하여 羅州(나주)에 隸屬(예속) 시켰다
五世에 이르러 諱는 尙衷이요 諡號는 文正으로 理學名節이 世上에 알려졌다 高麗 忠肅王의 元年壬申에 誕生하시어 癸巳에 文科에 올라 벼슬이 奉順大夫右文館直提學 이었는데 李朝에서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事 兼 領經筵禮文館春秋館書雲觀事 判戶曹事 金城府院君을 封하고 贈職하셨다 子의 諱는 訔이요 號는 釣隱이며 諡號는 平度니 高麗恭愍王十九庚戌(西紀1370年)年에 誕生하사 乙丑에 進士하고 戊辰에 文科에 올랐다 李朝에 들어와 太宗을 도와 政丞이 되시고 錦川府院君을 封하였다
子의 諱는 葵니 벼슬은 禮曹參判이요 子의 諱는 秉文이니 修義校尉中軍司直을 하고 子의 諱는 林禎이니 進士하고 肅川府使를 하셨다
子의 諱는 寅亮이니 號는 隱島窩며 벼슬은 通政大夫上護軍이니 곧 花庄으로 落鄕하신 先祖분이시다 世祖丁丑(西紀 1457)年 七月 十八日에 誕生하시니 公이 世祖가 禪位를 받을 때를 맞이해 仕意에 뜻이 없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아니했는데 成宗께서 勸進하여 忠義衛에서 數年間 供職했으나 조금도 蹉跌이 없어 곧 通政大夫上護軍에 올랐다
그러나 燕山昏朝를 맞아 宦情를 끊고 드디어 벼슬을 버리고 婦家를 따라 멀리 醴泉의 西쪽 花庄洞에 遁居하여 漁釣로 爲樂하고 詩書로 自娛하며 林泉을 遊賞하는 것으로 光陰을 因送했드니 늦게 鄕黨에서 鄕校의 訓導로 薦擧하여 頤養後生하고 規模를 嚴正하게 세우고 鄕風을 크게 糾正하였다 일찍이 順興錦城大君의 遺墟에 探訪하여 嗟嗟하고 鴨脚樹의 一支를 馬策으로 取用했다가 庭邊에 심었드니 마른가지가 다시 蘇生하여 繁盛하게 成長하여 오늘날 保護樹(聞慶市)로 指定 되었다
公의 天品이 峻嚴하시고 喜怒를 動靜之間에 表現하지 아니하시고 謹厚仁淳 하시어 德威가 兼全 하시니 居家處官에 小節에 不拘하시고 恰然히 古人의 風度가 있으섰다
配位는 淑夫人 仁同張氏니 延福君 末孫의 女라 長生於 文翰之庭 하야 有亞德淸儀 하시고 一男 七女를 두시니 아들은 世雄 인데 平山申氏琥之女에 娶하여 二男을 두시니 億壽,廣壽요 女는 中部參奉權五常과 碧潼郡守洪仲謙과 內禁衛姜世貞과 權繼禧와 忠順衛李結과 金應井과 申秀孫에 出家하였다
아 ! 슬프도다 公의 卓節과 懿行으로 文籍이 많을것인데 士禍로 因하여 燒失되고 世久無傳하니 恨之莫及이라 厥後로 文翰이 錦錦히 連續되었고 儒家의 凡節을 固守하여 姻婭葭葛이 華閥之門으로 結婚連姻 되었다,
公의 玄孫 諱 惟義는 壬亂에 忘憂堂郭再祐의 陣中에 들어가 倭敵과싸워 많은 戰功을 세웠다
라고 火旺錄과 醴泉誌에 실렸다,
惟義의 弟 諱 惟智는 明宗7年 壬戌(西紀1562)年生 工曹正郞을 지냈다
公의 五代孫 諱 澹은 以壽職으로 贈嘉善大夫 中樞府使하고 中樞府使公의 三從弟인 諱 應白이요 號 砥隱인데 折衝將軍을 지내고 學問에 專念하여 能曉經典하고 傍讀大家文籍하셨다
嘉善之孫 諱 安道는 氣宇가 峻嶸하고 性度가 嚴重하여 幼時부터 群兒들과 遊戱를 不초하고 老成長者를 쫓아 言論靜聽하기를 즐겼다 母夫人을 隨從하여 金谷外弟에서 놀다가 處士雲堂朴公泰華先生에게 受學하여 遂成大儒하고 晩遊於葛庵李先生之門하여 洛閩의 旨訣을 터득했다 肅廟己未(西紀1739)年에 生員試에 合格하고 庚午(西紀1750)年에 文科에 合格하여 癸酉年에 副司正으로 승문원副正字에 오르고 其后로 察訪과 博士와 成均館直講과 春秋館記注官을 歷任하고 出宰橫城縣監하여 敎民禮義하고 興學講道하여 文明縣으로 革新하니 銅碑를 세워 功德을 銘頌했다
그리고 公之十一世孫의 諱는 天壽요 號는 礪隱인데 純廟庚子에 司馬試에 合格하였으나 進意가 없고 子侄敎育에 專務하야 厚生 蒙養에만 心血을 傾注하셨다
子의 諱는 齋喆이요 以老職으로 都正의 벼슬을 生受 하였다
公之十二世孫의 諱는 齋政인데 早失所怙하고 事母夫人에 極其 孝誠하니 邑宰가 褒賞彰揚하고 孝誠을 聞于朝廷하니 禮曹에서 童蒙敎官의 벼슬을 下賜하고 命旌閭 하였다
花庄潘南朴氏가 自京落鄕한지 悠久한 光陰과 累代의 歲月을 經過 하도록 科宦함에는 赫赫한 樣像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文翰은 錦錦히 이어졌고 家勢도 秀富는 없었으나 儒家生活에 近接하게 하여 왔음은 先祖의 裕後의 遺澤이므로 貽謨의 敎訓으로 간직하는 바이다,,
十七世孫 商雨 盥手 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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