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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산문집 『못 가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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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7-28 08:35 조회4,1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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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못 가본 길…』 펴낸 싱그러운 팔순 작가 박완서 [중앙일보] 기사

나도 한마디 (1)

2010.07.28 00:12 입력 / 2010.07.28 00:45 수정

“한국전쟁 나던 그 해, 스무 살에 내 영혼의 성장 멈췄지”

소설가 박완서(79)씨가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를 이번 주말 출간한다. 최근 몇 년간 문학 잡지와 일간지에 실렸던 글을 모았다. 올해는 박씨에게 여러 모로 뜻깊은 해. 1931년생인 그가 우리 나이로 팔순이 됐고, 70년 문단에 나왔으니 등단 40주년이다. 또 박씨 문학의 커다란 수원지인 6·25 발발 60주년이다.

이런 각별함의 소산인 듯 미리 본 산문집에 실린 글은 편편이 향기롭다. 특히 한국전쟁은 물론 요즘 박씨의 주요 일과인 정원 가꾸기, 나이 듦에 대한 상념, 천안함 사건 등 정치사회적 사안에 대한 생각 등 다채로운 화제가 펼쳐진다. 박씨 문학과 인생을 중간 결산하는 육성(肉聲)인 듯싶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1970년 마흔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이래 언제나 문학적 평가와 대중의 인기 면에서 정상권이었다. 박씨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등단작인 장편 『나목』을 꼽았다. [박지혜 인턴 기자]

27일 낮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 마을 자택에서 박씨를 만났다. 박씨는 “연애소설은 모든 소설가의 꿈”이라며 “앞으로 멋진 연애소설 한 편 쓰고 싶다”고 했다.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을 먹으며 TV 드라마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푸른 댓잎처럼 싱그러운 현역이었다.

-서문에 ‘또 책을 내게 돼 기쁘고 대견하다’고 썼다. 감회가 남다른 것 같다.

“특별할 건 없다. 등단 40주년 같은 건 의미가 없다. 마흔에 늦게 등단해, 나보다 젊은데도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 많다. 한국전쟁은 다르다. 난 한국전쟁으로 인생경로가 바뀐 세대다. 내 나이가 새삼스럽고 금년 한 해가 별 일 없이 넘어갔으면 좋겠다. 그 전쟁은 내 의식 속에서 한 번도 끝난 적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김훈이 『남한산성』에서 겨울 추위 묘사한 대목을 읽고 1·4 후퇴 때 추위가 떠올라 실제로 세 달 감기를 앓았다고 썼다. 그만큼 전쟁이 여전히 생생한가.

“내가 한국전쟁을 소설에 많이 우려먹긴 했어도 나이 많은 사람 중 그런 내 반응에 공감하는 사람이 꽤 많다. 전쟁을 겪은 스무 살 무렵은 정신이 말랑말랑한 상태여서 뭔가 각인되기 쉬운 나이다. 그 때 입은 상흔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을 기다리는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기분인가.

“설명해 봐야 잘 모를 거다. 내 나이가 돼 봐야 안다. 앞으로 뭘 할까 보다 지난 세월만 생각하게 되는 나이다.”

-요즘도 상처 받아 잠 못 이루는 밤에는 이불 속에 태아처럼 오그리고 누워 엄마를 부르며 훌쩍인다는 대목도 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스무 살에 영혼의 성장을 멈췄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나 남편에게 감정적으로 많이 의존하는 편이었다. 대학 진학까지는 내 뜻대로였지만 운명의 장난 같은 전쟁을 겪으면서 결혼도 빨리 하고, 전혀 꿈꾸지 않았던 인생을 살게 됐다. 지나간 과거를 가정할 순 없지만 문학은 내가 좋아하는 거였지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보다 학문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것 같다.”

-화제를 돌려보자. 선생 소설의 매력의 비밀이 늘 궁금했다. 잘 읽히는 문체 때문인가.

“내 글이 잘 읽힌다고 하는 사람 중에 수다 떨듯 쉽게 쓰는 걸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실은 알아듣기 쉽게 쓰려고 굉장히 노력한다. 요즘은 젊었을 때보다 더 애를 쓴다. 얼마나 원고를 읽고 또 읽는지 모른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놓지 않는다. 고졸 정도의 학력을 갖춘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다.”

-특유의 신랄함도 매력적인 것 같다. 가령 『그 남자네 집』에는 주인공 여성이 한때 연심을 품었던 우유부단한 남자를 속으로 욕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소설은 연애소설이라고 써 본 거다. 내가 문학을 좋아하게 된 것도 출발은 연애소설이었다. 연애소설은 소설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문제는 요즘 연애에 등장하는 각종 소품이 과거와 너무 달라져서 내가 따라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소품이 변함에 따라 연애감정도 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언급도 있다. 정부의 조사 결과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싫어도 양쪽 얘기를 다 듣게 된다. 6·25도 우리가 먼저 도발했다는 학설이 있는데 내 경험으로 준비 없이 우리가 당했다고 확신한다. 당시 서울 돈암동에 살면서 어마어마한 북한의 탱크와 따발총 등 엄청난 전쟁 무기를 처음 봤다. 이번 사건도 지금 세금을 내고 있는 정부의 말을 믿으려고 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생각은.

“정부나 반대하는 쪽이나 국민을 좀 더 납득시켰으면 좋겠는데 정확한 내용을 모른 채 정부가 무조건 옳다는 쪽과 무조건 반대하는 쪽으로 편 갈린 것 같다.”

-요즘 즐거운 일이 있다면.

“5월에 왼쪽 발목을 다쳤는데 많이 좋아져 이번 달 초부터 정원을 다시 가꾸기 시작했다. 걸을 수 있는 것 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 요즘은 매일 매일 행복하다.”

-연애소설 말고 준비 중이거나 구상 중인 작품은.

“단편 글감이 머리 속으로 왔다 갔다만 하고 실제로 써지지 않는다. 장편은 이제 쓸 기력이 없다. 이제는 편안하고, 심심하게 살고 싶다. 절대로 부지런 떨며 시간에 쫓기며 살고 싶지 않다. 늙는 것도 쉬운 거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늙는 거 아니다.”

구리=신준봉 기자

사진=박지혜 인턴 기자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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