趾源과 錦平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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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07-02 13:35 조회3,491회 댓글0건본문
그 地方사람은 말하되 (華岩書院)은 先生만을 享祀하는 곳으로서 先朝에서 賜額한 祠堂인데. 祭享은 每年 한번씩 하였다. 書院이란 것은 百代에 祭祀하는 곳인데 또한 한 洞內에 있은즉 어찌 이 田地를 그의 所屬으로 하지 않을까고 하니 李侯은 말하되. 物件은 各基 主人이 있고 禮節은 各基 事情이 다른 것이다. 松栢을 보고서 그에 슲은 마음이 나는 것은 後人이 追遠하는 孝誠이고 祭祀를 올리고 宗仰하는 誠意를 表하는 것은 諸生들이墓賢하는 禮節이니 이것이 墓와 院이 다른 所然인데 어째서 이것을 옮겨서 書院에 부치리오.고 하였다. 그리고 얼 안돼서 善山 聞慶 晉州의 族親들이 先後에서 辭職하고 가니 李侯는 嘆息해 말하되 官職은 그리 되여도 이 丙舍는 아직 竣工하지 못했으니 나의 뜻한 바 工事는 해야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山에 依據해서 基地를 開拓하고 집 五間을 建築하는데 左右로는 房을하고 中間에는 마루로 하는 家圖를 처서 趾源에게 보이면서 나는 오직 地主로서 이 事役을 도울 따름이고 이것을 監督하고 保守하는 方道는 오직 君들에 있으니 자내는 아는가고 하기에 燕巖 趾源은 말하되 그러합니다,
先生의 神主가 陜川으로 돌아가실때 우리 王孝께서 그때 京畿道伯이 되시니 宗族이 모두 監營으로 모였는데 錦平尉는 나이 九十이라 지팡이를 집고 오셨고 文敬公도 또한 江外서 오셔서 서로 先生의 일을 이야기 하니 둘러 앉아듣는者가 모두 老人이라 눈물을 흘리고 少年을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後日은 너히들 일이다.
나는 그때 비록 어려도 오히려 그의 車를 타고 達해서 銅雀洞위에 오신것을 記憶한다.고 하니
그때에 後孫으로서 拜辭한 者가 四百餘人이나 되었으니 어찌 그리 盛했던고.
아. 슬프다. 선생은 碩德深學으로서 早年에 出世하사 寶玉같은 光輝를 가지시고 成儀있께 正色으로 討論하여 將次로 君王을 도와 큰 經綸을 펴시려다가 마침내는 小人의 排斥을 받아서 退職하사 流離 하실때에 오직 外宅인 大姓 坡平尹氏에 依支해서 陜川으로 와 살으셨다. 236P 庚申
그래서 山에 依據해서 基地를 開拓하고 집 五間을 建築하는데 左右로는 房을하고 中間에는 마루로 하는 家圖를 처서 趾源에게 보이면서 나는 오직 地主로서 이 事役을 도울 따름이고 이것을 監督하고 保守하는 方道는 오직 君들에 있으니 자내는 아는가고 하기에 燕巖 趾源은 말하되 그러합니다,
先生의 神主가 陜川으로 돌아가실때 우리 王孝께서 그때 京畿道伯이 되시니 宗族이 모두 監營으로 모였는데 錦平尉는 나이 九十이라 지팡이를 집고 오셨고 文敬公도 또한 江外서 오셔서 서로 先生의 일을 이야기 하니 둘러 앉아듣는者가 모두 老人이라 눈물을 흘리고 少年을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後日은 너히들 일이다.
나는 그때 비록 어려도 오히려 그의 車를 타고 達해서 銅雀洞위에 오신것을 記憶한다.고 하니
그때에 後孫으로서 拜辭한 者가 四百餘人이나 되었으니 어찌 그리 盛했던고.
아. 슬프다. 선생은 碩德深學으로서 早年에 出世하사 寶玉같은 光輝를 가지시고 成儀있께 正色으로 討論하여 將次로 君王을 도와 큰 經綸을 펴시려다가 마침내는 小人의 排斥을 받아서 退職하사 流離 하실때에 오직 外宅인 大姓 坡平尹氏에 依支해서 陜川으로 와 살으셨다. 236P 庚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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