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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박지원의 목민서‘칠사고’외 학술 심포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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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2-08 10:00 조회6,9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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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박지원의 목민서‘칠사고’외 학술 심포지움
일시: 2010년 2월 5일 13:00~18:00
장소: 용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주최: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후원: 한국학중앙연구소
발표: 1) 열하일기 이본의 재검토
         강사: 김명호(서울대)
     2) 연암박지원의 목민서 ‘칠사고’
         강사: 김문식(단국대)
     3) 박지원의 자편고 ‘연상각집’ 과 그계열본에 대하여
         강사: 김영진(계명대)
     4) 연민선생주석본 ‘구운몽’에 대하여
         강사: 허경진(연세대)

참석자;    대종중 총무유사외 5인



칠사고(七事考)
    연암박지원은 1797년(정조21) 7월에 면천군수로 제수되어 7월 15일 충청도 면천에 부임했다. 이후 그는 1800년 8월까지 면천군수로 활동했는데, 면천에서 그가 작성한 글을 모은것이 연민문고에 들어있는 ‘면양잡록’이다 필사본 면양잡록은 현재 5책이 남아있는데 그중에는 박지원이 작선한 목민서로 파악되는 ‘칠사고’의 필사본이 포함되어 있다.
    서명에 나오는 ‘七事考’는 수령칠사에서 나온 것으로 ‘칠사고’는 ‘수령이 해야할일을 고찰하는 서적’ 이란 뜻이다.

    '칠사고'의 내용을 보면
첫 번째로는 사대부 출신의 수령을 위한 지침서라는 점을 들수 있다.
    박지원은 마음을 보전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군자[存心愛物君子]가 수령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국가의 근본을 바르게 하고 백성을 돌보는 국왕을 돕는 행위로 파악했다.
두 번째 특징은
    각종 공문서를 철저히 관리하고 재화의 이동은 업무상 관련자들이 공동으로 관리하게
했다
    大同米 와 환상의 관리는 복수의 문서를 작성하고 공동 관리하게 했다.
    소송과 관계된 문서는 通引들이 관리하게 했다.
세 번째 특징
    환곡과 軍政의 운영을 향촌의 기본 단위인 統理를 기준으로 했다는 점이다.
박지원은 대동미나 還穀같은 錢穀의 운영은 국가의 경영뿐 아니라 수령의 신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므로 그운영에 신중을 기하라고 했다.
네 번째 특징은
    농사에서 水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서양의 水車 제도를 도입하자고 한 것이다. 박지원은 泰西의 수차제도는 간편하면서도 사용하기 쉬우므로, 재주가 뛰어난 장인에게 그 제도를 강구하여 제작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박지원은 1799년 봄에 ‘課農小抄’을 작성하여 정조에게 올리면서 마지막에 ‘限民名田議’ 라는 글을 첨부했다. 農政을 일으키려면 농민들의 토지가 소유가 균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제한된 면적을 초과하는 토지를 가점하지 못하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학계에서는 이를 ‘박지원의 限田論’으로 이해한다

‘칠사고’는 문장가이자 농학가였던 박지원에게 목민관이란 떠 다른 측면이 있었음을 주목하게 하는 자료다. 박지원은 늦은 나이에 벼슬길을 시작하여 고위직으로 진출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지만 자기의 관할 지역에 거주하는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오랫동안 축적해 온 실용적 지식을 적극 활용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칠사고가 면천군수 박지원의 실용적 지식이 반영된 18세기 말의 ‘목민심서’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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