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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부안의 김형주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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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종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1-15 11:40 조회5,928회 댓글0건

본문

지난 1월 13일 전라북도 부안군청을 찾았습니다.
參判 휘(諱) 蓍壽(시수, 1767~1834) 할아버지께서 쓰신 부안군청 뒤 옛 관아(官衙) 앞 진석루(鎭石樓)가 있었던 반석 위에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쓴 “봉래동천(蓬萊洞天)”이라는 초대형의 초서(草書)와 그 아래 해서(楷書)로 쓴 “주림(珠林)”, 그리고 예서(隸書)로 쓴 “옥천(玉泉)”의 여덟 글자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쌓여 찾기가 어려워 군 문화관광과에 찾았더니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습니다. 글씨가 눈에 덮였지만 워낙 큰 글씨(우측에서 좌측으로 두 자씩의 초서로 “蓬萊洞天”이라 썼는데 두 글자의 연장 길이가 가로 404㎝, 세로 523㎝에 이르고 글자 획의 평균 굵기는 15㎝쯤에 달하는 초대형의 글씨)라 네 글자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담당 공무원의 말에 따르면
“신축부지 북서쪽에 있는 부안현감 박시수의 봉래동천(蓬萊洞天), 옥천(玉泉), 주림(珠林)이라는 명문과 장방형의 샘 및 계단시설, 1기의 비각지 등을 보존해야 한다는 문화재청의 결정이 있어 청사 신축에 어려움이 있었다.”
고 합니다.
들고 보니 부안군민들께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특히 평생 교육계에 몸담으셨던 김형주 선생님께 ‘고맙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바쁘신 가운데에도 예정된 일을 뒤로 하시고 저를 위로해 주신 대전에 사시는 세보편찬위원장 용우(用雨) 족손님, 활당공후 증산공甑山公) 종손 천표(天表) 족손님 고맙습니다.

다음은 김형주 선생님께서 2003년 요구하신 시정 요구서 내용입니다.

부안 옛 관아앞(돌팍거리) 금석문 훼손 시정 요구서

평생을 우리고장의 문화와 유물, 유적을 사랑하고 아껴온 우리들은 옛
관아 앞(일명 돌팍거리)의 조상이 남긴 귀중한 문화유적인 금석문"봉래
동천(蓬萊洞天), 주림옥천(珠林玉泉)"이 전투경찰들의 주둔과 주차로 인
하여 크게 훼손되고 있음을 그대로 볼 수만 없어 아래 사항을 부안군 당
국에 강력히 요구하니 조속히 시정하여 부안의 문화재를 지켜주시기 바
랍니다.

1. "봉래동천(蓬萊洞天), 주림옥천(珠林玉泉)"의 금석문자가 각자되어 있
는 돌팍거리 구역 내에서 모든 경찰부대원들의 즉각적인 철수와 일체의
주차행위를 금지하도록 하여줄 것.

2. 위의 금석문자들의 안전한 보호를 위하여 각자된 그 주변에 보호담장
을 설치하여 줄 것.

3. 그 현장에 이들 문화유적의 유래와 의미, 문화재적인 가치 등을 설명
하는 안내판을 설치하여 줄 것.

4. 문화재적인 유물이나 유적 위에 주차장을 설치하는 부끄러운 일을 두
번 다시 하지 말 것.

서기 2003년 10월 6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안 향토문화대학장
부안군 향토문화연구회장 김형주


휘 朴蓍壽(시수)1767--1834
정조10 10/13 한림의 권점(圈點)을 행하였다. 5점을 맞은 사람은 박시수(朴蓍壽) 이었다.
    12 1/20    정자(正字) 박시수(朴蓍壽). 시수는 고 봉조하(奉朝賀) 서명응(徐命膺)의 외손이다.
정조18 12/22 박시수(朴蓍壽)를 사헌부 지평으로
정조 12년( 1788 1월 22일) 박시수를 운각에 두게 하다
상이 전교하기를,
“등과한 처음부터 이미 저의 등과가 거의 불행이 될 줄 알았다. 학문과 지식이 너무 성취되지 않았고 행동거지가 어린이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 문계(問啓)에 대답한 계사를 보건대 더욱 해괴하다. 명색이 괴원의 정자로서 공당(公堂)에 앉아 동료를 향해 이런 망언(妄言)을 하였으니 수치를 끼친 바가 크다. 엄히 치죄해야 마땅하겠으나 근래에 일이 많기 때문에 그냥 두고 있다. 박시수를 개정해 운각(芸閣)에 예속시켜 몇 년을 한정해 관직에 의차(擬差)하지 말고 그로 하여금 독서하게 하여 성인(成人)이 되기를 기다리라.” 하였다.
순조9 1/30     홍문록(弘文錄)을 행하였는데,【부제거(副提擧) (李存秀), 부응교(副應敎) 김노응(金魯應), 부리(副校理)
             박종신(朴宗臣) 】 3점(點)을 얻은 사람은 박시수(朴蓍壽) 박주수(朴周壽)․이다.
순조12 9/13    도당록(都堂錄)을 행하였다.【영의정 김재찬, 좌의정 한용귀, 우참찬 김계락, 홍문제학 박종경,이다.】
             4점(點)을 받은 사람은 박시수(朴蓍壽)․
순조13 4/15    부안 현감(扶安縣監) 박시수(朴蓍壽),
순조16 3/14 .배종 승지(陪從承旨) 박시수(朴蓍壽) 품계를 올려 주고,
             박종경은 숭록(崇祿)의 품계로 올려 주고,
             박시수․ 통정(通政)의 품계로 올려 주었다.
순조22 9/30    영흥 전 부사(永興前府使) 박시수(朴蓍壽), ,
순조25 1/16    박시수(朴蓍壽)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순조25 7/18    박시수(朴蓍壽)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순조31 8/6     박시수(朴蓍壽)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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