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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 열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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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한가람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1-12 14:01 조회3,644회 댓글0건

본문

열부각(烈婦閣) 과 충복각(忠僕閣)
이 두개의 각은 문수면 만방리에 자리했었으나 도로 확장을 위해 이곳 선비촌으로 이건되었다.
 
열부 박씨는 반남박씨로 대사간 소고 휘 박승임의 후손인 박사건(朴師騫 1796~1820 )의 딸이다.
17세에 민조현에게 출가하였다가 신행전에 부군(夫君)과 사별(死別)하고 청상으로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있던 중
이웃의 김조술이란 자가 박열부를 범하려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조술은 이에 반감(反感)을 가지고 박씨는 아이를 셋을 낳았고
또 아이를 가졌다고 하면서 허무맹랑한 말을 유포(流布)하여 열부의 체면을 손상하므로
열부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하여 관아에 가서 울며 호소하였으나 조술의 금력에 의하여 관의 처리는 부진하고
오히려 열부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환됨에 열부는 억울함을 참다 못하여 마지막 결심으로
다시 관에 가서 거듭 호소하다가 사태가 불리함에 칼을 빼어 자결하니
관비(官婢)가 열부의 시신을 검사하고 유소이건(乳小而乾 : 젖은 적고 말라 붙었으며)
복첩어배(腹捿於背 : 배는 등에 붙었다는 뜻)하니
진처자야(眞處子也 : 순진한 처자라는 뜻)라고 증언하였고
사림에서는 열부의 억울함을 누차 청하는 동안 6년 간이나 장례(葬禮)도 치루지 못하였다.한편 노비 고만석이 상전의 결백을 증명코져 6년동안 서울에서 걸식하면서 쟁(錚)을 6차례나 울리고
천인(賤人) 신분으로 재상가의 문전에서 열부의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 도움이 되어
드디어 1825년에 조술은 처형되고 나라에서 박열부의 정려(旌閭)를 내리고
노비 고만석에겐 충복각을 내렸다...


O 문수면 위치 영주시의 남쪽으로 자리하여 동쪽은 이산면 평은면에 남쪽은 안동군 북후면 예천군 보문면에
서쪽은 장수면 호문리에 북쪽은 영주시 조암동에 연접되어 있다.


(자료제공; 반남박씨 족보 싸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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