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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을 판단하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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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종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12-25 17:51 조회3,4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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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

명문(名門)를 판단하는 기준

첫째, 문묘배향 성현(文廟配享 聖賢): 모든 겨레가 스승으로 받들며, 제왕(帝王)의 신분으로 자기 조상이 아닌 신하에게 제사를 드리는 유일한 대상(한국 유학 2천년사에 18명 배향).

둘째, 종묘배향 현신(宗廟配享 賢臣): 왕이 세상을 떠난 후 영원한 그 시대 왕의 신하로 인정받아 종묘에 배향되는데, 이 또한 충성심과 도덕성, 국가에 대한 공헌도, 학문적 업적 등을 고려함.(건국초기는 약간 다름).

셋째, 대제학(大提學)(문형 文衡): 학자로서 도덕과 학문의 깊이 등 최고의 지위이며 상신(相臣) 중에도 문형을 못한 사람이 더 많았고 명예는 상신보다 더 높았으며, 더불어 모든 관직 중 유일하게 임기가 제한되지 않아 문치주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음.

넷째, 상신(相臣)과 대과급제자: 삼정승(三政丞)을 기준하며, 그 시대 정치적 권력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바 크며, 대과급제자는 명석함의 척도로 봄. 그러나 대과급제자의 수는 정치적 혁명기의 처신이나 혹은 집안에 왕비가 나와서 세도정치를 한 결과로 얻은 덤일 수도 있었다. 특히 상신이나 대과급제자가 많은 씨족은 국성(國姓) 왕족(王族)인 전주이씨(全州李氏)인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관직에 오를 수 없는 학문 있는 왕손(王孫)들을 대접하는 방법으로 그 수가 많음은 당연한 결과였다(따라서 일반적으로 전주이씨는 ‘명문’ 비교에서 제외함). 그 외에도 왕비가 여럿이 나와 세도한 집안이 또한 그러함을 알게 되는데, 그 때문에 왕비가 많이 난 집안을 이른바 '치마양반'이라 하여 문벌, 벌족의 등급을 낮추어 보는 것이 전통이었다.

다섯째, 몽시(蒙諡) 및 봉군(封君): 학문적 업적이 현저한 학자, 정2품 이상의 실직을 역임한 고관, 국가에 큰 공훈을 세운 공신 등에게 내리는 시호 및 군호.

여섯째, 청백리(淸白吏): 관리의 도덕적 표상이 됨.

일곱째, 호당(湖堂), 남대(南臺), 경연관(經筵官): 천재적 자질이 있는 과거급제자에게 임금이 특별히 사가독서를 명하고, 후일 왕의 통치이론(統治理論)을 교수(敎授)하는 신분이 됨.

여덟째, 부조묘(불천위 제사): 위의 여러 가지를 망라하여 영원히 제사를 지내라고 국가에서 인정하여 내림. 벼슬의 지위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기준이 3대 봉사 혹은 4대 봉사로 법으로 제한하였으나 불천위(부조)는 이 제한에서 예외가 됨.

아홉째, 왕비 배출: 가문의 영광이 되기는 하지만 선비들의 도덕적 기준에서 볼 때는 권력과 가까이 한다는 측면에서 우선순위에서 뒤로 처짐. 실제로 한 시대 권력의 향방에 따라 왕비를 연속 배출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음.

열째, 기타: 당상관(堂上官: 정삼품 상계 이상), 부마(駙馬: 임금의 사위), 정려(旌閭: 충신, 효자, 열녀) 등.

최고의 명문 조건: 무엇보다도 행동이 올바를 것!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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