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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솔공(副率公)의 가장(家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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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명서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7-02 09:26 조회3,709회 댓글0건

본문


> 행 익위사 부솔공 증사헌부 지평 박공 동윤(行翊衛司副率公贈司憲府持平朴公東尹)
> 부솔공 동윤(副率公 東尹)은 졸헌공(휘 응복)의 장자시다
> 공은 4형제(동윤. 동열. 동망. 동양.)중 장남으로 태어나시어 평생을 모친을 돌보시느라 동생들 처럼 많이 배우지도 못하셨다 임진(壬辰)년 외구의 침범으로 모친을 받들고 산협으로 피난하면서
> 굶기를 밥먹듯 하면서도 모친 봉양에만 전력하셨다 그러다가 부친보다 5년전에 아깝게도 생을 마치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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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의 어렸을때 자란 과정은 남달리 굳건한 체력과 담력으로 또레 아이들을 제압했으며 장수의 기질을 갖어 불의를 참지못하고 호령을 하시면 그누구도 응대를 못하셨으며 병서에도 능통 하셨으며 호탕한 기질 만천하에 과시 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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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상(광해)이 세자로 있을때 임난으로 인하여 이천에 이르렀을때 가서 배옵고 금오랑(금부도사)을 배수하였으나 금무 하지않았다 계사년(1593)에 해주에 이르러 익위사 부솔에 제수 되었으나 뜻밖의 질병으로 하루만에 돌아가시어 부임을 못하셨다
> 그뒤 호성 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일등에 추록되고 사헌부 지평으로 증직 되셨다
>     이상은 계제(季弟)東亮 선 中에서 발췌                부솔공파(副率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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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솔공(副率公)의 가상(家狀)
가상(家狀)--->가장 ※행장(行狀); 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


행 익위사 부솔공 증사헌부 지평 박공 동윤(行翊衛司副率公贈司憲府持平朴公東尹)
부솔공 동윤(副率公 東尹)은 문강공(휘 소)의 장손이요 졸헌공(휘 응복)의 장자시다

부솔공 동윤(副率公 東尹)은 문강공(휘 소)의 장손이요 졸헌공(휘 응복)의 장자시다
--->부솔공 동윤(副率公 東尹)은 졸헌공(휘 응복)의 장자시다
(※ 문강공 장손; 동현(東賢)

공은 4형제(동윤. 동열. 동망. 동양.)중 장남으로 태어나시어 모친 슬하에서 평생을 봉양 하시다가 아깝게도 부친보다 5년전에 생을 마감하셨다

박응복(1530-1598)
동윤(1561-1593)
동렬(1564-1622)
동망(1566-1612)
동량(1569-1614)

장남으로 태어나시어 부친보다 5년전에 생을 마감하셨다

모친 슬하에서 자라 철이 들어 평생을 모친을 돌보시느라 동생들 처럼 많이 배우지도 못하셨다 임오(壬午)년 왜구의 침범으로 모친을 받들고 산협으로 피난하면서

임오(壬午)년--->임진(壬辰)년 ※ 임진왜란

굶기를 밥먹듯 하면서도 모친 봉양에만 전력하셨다

공의 어렸을때 자란 과정은 남달리 굳건한 체력과 담력으로 또레 아이들을 제압했으며 장수의 기질을 갖어 불의를 참지못하고 호령을 하시면 그누구도 응대를 못하셨으며 병서에도 능통 하셨으며 호탕한 기질 만천하에 과시 하셨다고 한다


금상(광해)이 세자로 있을때 임난으로 인하여 이천에 이르렀을때 가서 배옵고 금오랑(금부도사)을 배수하였으나 금무 하지않았다 계축(1593)년에 해주에 이르러 익위사 부솔에 제수

계축(癸丑)년--->계사(癸巳)년(1593)


되었으나 뜻밖의 질병으로 하루만에 돌아가시어 부임을 못하셨다
그뒤 호성 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일등에 추록되고 사헌부 지평으로 증직 되셨다
     이상은 계제(季弟)東亮 선 中에서 발췌                부솔공파(副率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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