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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종원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5-18 19:12 조회3,8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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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巖集(卷之一)에 나오는 합천화양동병사기(陜川華陽洞丙舍記)의 마지막 부분:


吾亦外裔也。今觀此記。岡巒體勢。可以想像。而用敷遺後。休于無窮。文亦有一唱三歎之意。


이 마지막 부분은 연암공의 글이 아닌 것 같은데 번역자(고전번역원)가 아무런 설명 없이 다음과 같이 번역만 해 놓아 읽는 사람들을 다소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다음은 고전번역원측의 번역과 주(註)입니다.


나 또한 외후손이다. 지금 이 기(記)를 읽으매 산소 주변 산들의 형세를 상상할 수 있으니, 이로써 후손들에게 끼친 무궁한 복택을 부연하였다. 문장 또한 일창삼탄(一唱三歎)[주D-010]의 뜻이 들어 있다.


[주D-010]일창삼탄(一唱三歎) : 한 사람이 노래를 선창하면 세 사람이 화답한다는 뜻으로,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시문이 매우 뛰어날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합천 군수가 앞장서 이루어 놓은 일에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나서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쓴 듯하다.


위의 번역에서 吾亦外裔也。今觀此記。岡巒體勢。可以想像。 까지는 한문 초보자들도 자전이나 사전 등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而用敷遺後。休于無窮。 부분은 번역문 자체가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또 文亦有一唱三歎之意。에 대한 주([주D-010])도 약간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어 그 주체가 누구인지를 혼동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전문번역가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가 바로, 해석이나 주를 달아주지 않아도 대체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쉽게 번역을 해주면서 정작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가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을 사용하여 번역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번역문을 보아도 무슨 뜻인지를 짐작하기 힘들 때가 종종 있어 안타깝습니다. (저는 한문을 잘 모릅니다).

이미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吾亦外裔也。今觀此記。岡巒體勢。可以想像。而用敷遺後。休于無窮。文亦有一唱三歎之意。부분은 연암공의 글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1831년 연암공의 아들 혜전공(蕙田公) 휘 종채(宗采)께서 쓰신 "과정록추기(過庭錄追記)"에 의하면, 고본(稿本)으로 가장(家藏)되어 오던 저자의 유고는 1829년 효명세자(孝明世子)(익종 翼宗)의 명으로 규장각에 올렸다가 1830년 세자가 죽자 돌려받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1829년 이전에 유고의 수집과 정리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이며 그 작업에는 저자의 처남이자 오랜 친구였던 지계(芝溪) 이재성(李在誠)(字 仲存), 아들 혜전공 휘 宗采, 휘 종간(宗侃=종의 宗儀: 백부 喜源으로 繼后), 손자 환재공(瓛齋公) 휘 규수(朴珪壽) 등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古3648-文25-110)에서 소장하고 있는 「연암집」 필사본은 이때의 정리본을 바탕으로 1922년 김승열(金承烈)이 다시 교정한 것이며, 곳곳에 박종채ㆍ박종간(종의)의 편집주(編集註)와 李在誠(仲存)의 평(評)이 실려 있습니다. (참고: 고전번역원의 번역 저본은 1932년 후손 朴榮喆이 연활자로 간행한 삼간본(三刊本)으로 국립중앙도서관장본(한46-가1145)이라고 합니다)

吾亦外裔也。로 시작하는 마지막 부분은 아마도 이재성(중존)이 쓴 평(評)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따라서 “一唱三歎之意”는 연암공이 아니라 평자(評者 이재성)의 입장에서 해석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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