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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代), 세(世), 그리고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
중국 청(淸)나라의 언어학자 단옥재(段玉裁)(1735~1815)의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 따르면, 세(世)와 대(代)는 본래 다른 의미를 가진 글자였다고 한다. 세(世)는 십(十)을 세 개 이어놓은 글자로서 삼십년(三十年爲一世)을 가리키며, 부자(父子)가 서로 잇는 것(父子相繼曰世)을 뜻하는 회의문자(會意文字)이다. <예기>(禮記)에도 부모와 자식 사이를 一世라 하고 3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代)는 고칠 경(更)(更也), 고칠 개(改)(改也)와 같은 의미로 ‘이것을 저것으로 바꾸는 것’을 가리켜 대(代)라고 했다. 따라서 세대를 의미하는 경우, 본래는 세(世)라고 해야 옳았다. 그런데 왜 대(代)가 함께 쓰이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전제군주(專制君主) 시대에 군주(임금)의 권위는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인간이든 사물이든 천하 만물이 군주 한 사람의 소유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군주의 지배를 받는 백성들의 삶 자체가 바로 군주가 내린 “성은”(聖恩)의 결과로 여겼다. 군주의 모든 행동은 바로 정(正)과 진(眞)을 대표하는 것이었으니 그는 곧 하늘이요 신(神)과 같은 존재였다.
이러한 군주의 절대적 권위는 백성들의 일반 언어(言語)와 문자(文字) 생활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군주의 이름자(字)는 누구도 자신의 이름자로 사용할 수 없었으며, 말이나 글 속에서 아예 언급하는 것조차 금(禁)했는데 이것을 ‘휘(諱)한다’고 했다(또는 피휘 避諱). 즉 군주의 이름자를 감히 쓸 수 없으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당대의 군주뿐만 아니라 해당 왕조 역대 모든 군주들의 이름자까지 엄격하게 피해야 했었으니 백성들의 일상적 언어 및 문자 활동에 상당한 불편을 초래했을 것이 분명하다.
피휘(避諱)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같은 뜻의 글자로 대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一)은 단(單), 원(元)은 수(首), 왕(旺)은 창(昌) 등으로 바꾸는 것이다(한문교육회 자료 참조). 여기서 바로 대(代)자가 등장하게 된 이유를 살필 수 있다. 당(唐)나라 태종(太宗)의 이름이 이세민(李世民)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世자와 民자를 함부로 쓸 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써왔던 세(世)자를 대치할 글자를 찾다가 결국 대(代)자가 대신 쓰이게 되었다. 즉 ‘대신할 대’(代)자가 세(世)를 대신하게 되었고 우리는 오늘날에도 세(世)자를 ‘대’ 세(世)라고 훈독한다.
당나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세(世)자를 피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자 차츰 代의 사용이 줄어들고 世가 다시 나타났으며, 世와 代를 함께 붙여서 ‘世代’라는 말도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代와 世의 사용에 있어서 약간의 혼란(?)을 야기한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초기의 족보(구보 舊譜)에서는 자손들의 순서를 一代, 二代, 三代, 四代, 五代 등 代로 표시하다가 후기의 족보(신보 新譜)에서는 一世, 二世, 三世, 四世, 五世 등 世로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의 경우에도 임오보(1642)에서는 代로 표시하였으나 그 다음 계해보(1683)부터는 世로 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代가 世를 대신하여 쓰였던 글자이니 결국 代와 世는 같은 뜻으로 쓰인 글자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5代祖나 5世祖나 같은 뜻이며, 8世孫이나 8代孫이나 같은 뜻이 된다. 그러나 두개의 요소(要素)가 처음에는 비록 같은 뜻으로 쓰였다고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면서 의미(意味) 분화(分化)가 일어나는 것이 언어의 생리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代와 世가 경우에 따라 약간 다르게 쓰이게 된 것은 바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의미 분화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代와 世에 대한 혼란(?)은 이세민(李世民)이 그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는 代와 世의 구분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언어란 본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형식(形式 form)과 의미(意味 meaning)가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대다수 언중(言衆)이 받아들이는 쪽을 따르는 것이 순리(順理)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