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代)와 세(世) 재고(再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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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代)와 세(世)
대(代)와 세(世)의 용법과 관련하여 “上代下世”라는 사용원칙(??)이 있는 모양이다. 가령 甲을 기준 인물로 놓고 그 상하(上下) 세대를 살펴보면,
(1) 代祖 ....., 7, 6, 5, 高祖, 曾祖, 祖, 父, 甲, 子/女, 孫, 曾孫, 玄孫, 5, 6, 7, ..... 世孫
(2) 世祖 ....., 7, 6, 5, 高祖, 曾祖, 祖, 父, 甲, 子/女, 孫, 曾孫, 玄孫, 5, 6, 7, ..... 代孫
(3) 代祖 ....., 7, 6, 5, 高祖, 曾祖, 祖, 父, 甲, 子/女, 孫, 曾孫, 玄孫, 5, 6, 7, ..... 代孫
(4) 世祖 ....., 7, 6, 5, 高祖, 曾祖, 祖, 父, 甲, 子/女, 孫, 曾孫, 玄孫, 5, 6, 7, ..... 世孫
(참고: 현손 아래의 후손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잘 쓰이지 않으므로 數字로만 나타냄).
의 네 가지 방식이 나올 수 있는데 이 중에서 (1)번 방식이 어법(語法)에 맞다는 주장이 아마 “上代下世”라는 말의 뜻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上代下世” 원칙(??)은 그야말로 “불변의 원리”라고 보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예컨대, 현석공(휘 세채)께서 찬(撰)하신 평도공(휘 은) 신도비문은 “惟我九世祖左議政錦川府院君平度公...”(유아9세조좌의정금천부원군평도공...)으로 시작하고 있으며, 정재공(휘 태보)께서 지으신 참판공(휘 규)의 묘표 음기(陰記) 말미에 보면 “九代孫坡州牧使泰輔謹書”(9대손파주목사태보근서)라고 마무리되어 있다. 따라서 “上代下世”라는 표현은 여기에 전혀 적용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 숙종(肅宗)이 우암공(尤菴公)(송시열 宋時烈), 현석공 등과 더불어 문정공(휘 상충)의 추증(追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정재공께서 하신 말씀에 <檢討官朴泰輔曰: “此乃臣十代祖也。 以經學名世, 與鄭夢周齊名。.....”(검토관 박태보가 말하기를, “이 분은 바로 신의 10대조(十代祖)로서, 경학(經學)으로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쳐 정몽주와 이름을 나란히 하였습니다.....”)>라고 하여 “代祖”가 사용되었다. 그 외에 “○世孫”의 용례도 흔하게 나타나고 있어 위의 (1), (2), (3), (4) 방식 모두가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代”와 “世”의 구분은 상하(上下) 구분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와 “세”의 사용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 눈길을 끄는 점을 지적한다면, 첫 족보 임오보에서는 호장공(휘 응주)을 “一代”, 급제공(휘 의)을 “二代”, 진사공(휘 윤무)을 “三代”, 밀직공(휘 수)을 “四代”, 문정공(휘 상충)을 “五代”, 평도공(휘 은)을 “六代” 등으로 “代”를 써서 표기하였으나 2차 계해보부터 “代”를 “世”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代”와 “世”가 옛날에도 약간의 혼란(?)을 유발했을 가능성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대”와 “세”가 항상 같은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을 “대한민국 제3세 대통령”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반면에 서양 임금들의 명칭을 번역할 때는 “조지 1세”, “조지 2세”, “헨리 5세”, “헨리 6세” 등 “세”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에도 (예를 들면) 에이브러햄 링컨을 미국의 “제16세 대통령”이라고는 하지 않고 반드시 “대”를 써서 “제16대 대통령”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대”와 “세”의 의미(意味)상의 차이(差異)를 살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는 주로 순서(順序)적 의미를 가지는 반면, “세”는 순서적 의미 외에 가문적 계보(家門的 系譜 family line)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치 사회적, 비(非)가문적 입장에서 볼 때에는 “제○대 임금”, “제○대 대통령” 등으로 “대”를 쓰지만 “조지 2세”, “헨리 6세” 등은 가문적 계보를 표시하므로 “세”를 쓰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 장관(長官)은 똑똑한데 그 집 2세는 신통치 못해.”라고 할 때 사용하는 “세”도 가문적 계보(생물학적 혈통으로서의 세대 generation)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5대조”, “8대조”, “5세조”, “8세조”, “5대손”, “8대손”, “5세손”, “8세손” 등은 기준 인물에서 출발하여 위로의 순서 또는 아래로의 순서, 그리고 가문적 계보가 결합된 말(개념)이므로 “대”와 “세”를 혼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기준 인물이 없이 “반남박씨 1세조”(潘南朴氏 一世祖)라고 한다면 호장공(戶長公)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를 잇다”, “대가 끊어졌다”라는 표현은 사용하지만, “세를 잇다”, “세가 끊어졌다”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代”는 독립명사(獨立名詞)로도 쓸 수 있지만, “世”는 아직 독립명사로는 쓰이지 못하고 의존명사(依存名詞)로만 쓰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조할아버지 대(代)에 이 마을로 이사를 왔습니다.”라고는 하지만 “고조할아버지 세(世)에 이 마을로.....”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대”는 집합적(集合的) 숫자와 함께 쓸 수 있지만 “세”는 그렇게 쓰지 않는 것 같다. 예컨대, “그 집에는 증조부모까지 4 대(代)가 모두 함께 산다.”라고는 하지만 “..... 4 세(世)가 모두 함께 산다.”라고 하면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들린다. 또 “이 물건은 삼 대째 내려오는 가보입니다.”라고는 하지만 “..... 삼 세째 내려오는 가보입니다.”라고 하면 대단히 어색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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