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도공 대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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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각 조간신문에서는 포은 정몽주의 대책문 발견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대의 우리 선조님의 대책문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있는분이 별로없는것 같다.
6세 선조님이신 문정공(文正公) 휘(諱) 박상충(朴尙衷) 할아버지는 계사(1353)년 공민왕이 처음으로 과거를 설치할 때 지공거(知貢擧) 이제현(李齊賢) 등이 이색을 장원으로 뽑았고, 공께서는 아원(亞元=2등)으로 급제하셨다.
문정공은 정포은과 동시대 같이 학궁(學宮=성균관)을 맡아 가르칠 적에는 같은 제공(諸公)들과 함께 선발되었고
문정공께서 일찍 1375년 순절(殉節)하심으로 뜻을 다 이루지 못하셨으나
정포은은 공께서 순절하신 다음해 1376년 목은선생의 뒤를 이어 성균관의 대사성을 지내셨고 반대 세력에 의해서 1392년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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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공의 윤자(胤子=대를 이은 아들) 평도공(平度公) 박은(朴訔) 의 1388년 과거 급제 대책문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전시 사병과 이인급제(殿試 賜丙科 二人及第)
高麗 禑王14年 10月 日(戊辰1388年)19歲
대책: 고시(對策 考試)
제술(製述)을 배운 문헌공(文憲公)의 학도(學徒)인 성균관진사(成均館進士) 신 박은(臣 朴訔)입니다 본관(本貫)은 반남현(潘南縣)이며
부(父)는 봉순대부 판전교시 우문관 직제학(奉順大夫 判典校寺 右文館 直提學) 상충(尙衷)이고
조(祖)는 봉익대부 밀직부사 상호군치사(奉翊大夫 密直副使 上護軍致仕) 수(秀)이며
증조(曾祖)는 진사 양온영동정(進士 良醞令同正) 윤무(允茂)이고
외조(外祖)는 선수 봉훈대부 정동행 중서성 좌우사랑 중 광정대부 도첨의찬성사 우문관대제학감 춘추관사 상호군(宣授 奉訓大夫 征東 行 中書省 左右司郞 中 匡靖大夫 都簽議 贊成事 右文館大提學監 春秋館事 上護軍)이며 시호(諡號)는 문효공(文孝公)인 이곡(李穀)이고 본관(本貫)은 한산(韓山)입니다
전시(殿試 임금님 앞에서 보는 과거) 근습(謹習 삼가 배우고 익혀옴)
대책(對策 고시상주문 考試上奏文) 봉함(封緘 엎드려 상주문을 올리나이다)
고시제(考試題)
왕(王)이 말씀하시기를 대개 듣건대 도(道)의 궁극적 근원(根源)은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구비(具備)하여져 제왕(帝王)의 정도(正道)를 행하고 성현(聖賢)의 학문(學問)을 밝혀 나타남이니 리학(理學)들의 극치(極致)가 아니다 순(舜)이 우(禹)에게 선위(禪位)하여 이르기를 오직 정기(精氣)는 하나이며 진실로 그 중용(中庸)의 길을 취(取)한다. 공자(孔子) 대답에 안연(顔淵)이 묻기를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仁)이 된다하니 무었을 중(中)이라 이르며 무엇을 인(仁)이라 이르는지요.
정도(正道)를 바라는 임금과 성학(聖學)을 지향(志向)하는 선비는 순과 우를 사모하지 않을 수 없으며 공자 안자(孔子 顔子)를 따라 그 도를 얻는 자는 누구 인가요 한(漢)의 명제(明帝)와 당(唐)의 태종(太宗)은 원로(元老)를 숭배(崇拜)하고 자문(諮問)하여 인의(仁義)를 깨달아 행하고 당나라 영평 정관(永平 貞觀)의 정사(政事)이었으니 과연 우하(果然 禹夏)의 정도(正道)에 부끄러움이 없겠는 지요
동중서(蕫仲舒)와 양웅 한유(楊雄 韓愈)의 무리는 강명 절차(講明切磋)하여 도(道)로써 자기의 임무(任務)로 하고 광정삼책(廣庭三策)으로 능히 천도(天道)와 인도(仁道)의 깊이를 개발하고 法言(楊雄이 지은 冊) 原道(韓愈가 지은 글)를 능히 함양 체득(涵養體得)하여 천명솔성(天命率性)의 뜻에 맞았는가 때를 얻어 행하여 과연 그 임금이 二帝三王의 성세(盛世)에 이르렀는가 송대(宋代)에 이르러 진유(眞儒)가 번갈아 일어나서 경서로 하여금 성현(聖賢)의 학문을 체득(體得)하여 유용(有用)한자는 제왕의 정도가 진흥하고 그 임금이 유용치 않았으면 애석(哀惜)한 바로다 내가 유치(幼稚)하여 이 중난(重難)한 일을 받아 부하된 임무를 극복(克服)하려고 생각하여 날마다 경연(經筵)을 열고 지극히 도를 강구(講究)하나 학력이 미치지 않는지라 자네들 대부와 함께 진실한 학문을 밝히고 착한 정도를 일으키는 것이 나의 뜻이다 성현의 학은 무었을 론설(論說)하여 제왕의 리(理)는 어떠한 일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 가 자세히 글로 저술(著述)하기를 청한다.
고시문제 답안
신은 듣건대 재왕의 이치는 도를 근본으로 하고 성현의 학은 심기(心氣)를 근본으로 하나니 도의 근본 체는 지극히 커서 한 말로 말한다면 중용(中庸)일 따름이다 마음의 덕(德)은 하나뿐 아니니 한 말로 그 요점을 든다면 인(仁)일뿐이다
중(中)은 반드시 인(仁)이고 인은 반드시 중으로서 두 극(極)이 아닌 고로 성현의 학(學)이 밝게 나타나면 제왕의 이치(理致)가 행하여집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주상전하는 신등에 책문(策問)하시어 첫째로 순 우(舜 禹)와 공자 안자(孔子 顔子)가 상전(相傳)한 심법(心法)을 물으시고 계속하여 한당(漢唐)의 제유(諸儒)가 성학이 된 사실을 물었습니다.
회고(回顧)하건대 신(臣)은 천박(淺薄)하고 고루(固陋)하여 어찌 족히 대답하겠습니까. 그러나 신은 일찍이 부유하지 못한데서 공부하여 늘 책에서 성현의 깊은 근원에 애착(愛着)되어 있었습니다.
금일 다행이 고시과목(考試科目)에 대비하여 참람하게도 성책(聖策)을 받으니 감히 성청(聖聽)을 범하여 평소의 회포진술을 다하지 못하겠습니다. 신은 성책을 읽으니『대강 듣건대 도의 대원(大原)은 천에서 나고 사람에게 구비되어 제왕은 이를 위하여 행하고 성현의 학을 위하여 밝히며 理와 學은 이극(二極)이 아니다 순이 우에게 선위(禪位)하여 이르기를 오직 정(精)은 하나요. 진실로 중용의 길을 취하는 것이다
공자의 답에 안연이 묻기를 극기복례(克己復禮)하면 인이 된다하니 무었을 중이라 이르고 무었을 인이라 이르는가.』하였다 신은 제왕의 도로써 중에서 더 큰 것이 없는 고로 이로써 요(堯)가 순(舜)에게 선위하고 순이 우에게 선위하여 그 전위할 때 반드시 이르기를 오직 정은 하나인 것이다 대개 정이 아니면 살필 수 없고 한 마음 아니면 지킬 수 없다 정으로 살피고 한 마음으로써 지킨 연후에라야 가히 중용을 취하는 것이다
이 제왕의 이는 도를 근본으로 함이요 성현의 학은 인에 앞서는 것이 없는 고로 공자는 이를 안자에게 전수하고 그 전수할 때는 반드시 이르기를 극기복례 하는 것은 대개 인을 하고자 함이니 마땅히 인의 해로운 것은 버려야한다 그런고로 한 마음에 티끌만한 사욕도 없이 천리(天理)의 근본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그런 후에 가히 인이 될 것이다 이르기를 중은 대중이요 지정(至正)의 도다 이는 도로써 본체(本體)를 총리(總理)한다는 말이며 인을 말한즉 천지(天地)가 만물을 생육(生育)시키는 마음으로 사람이 체득하여 생존하는 것이니 이는 마음으로써 덕행을 완전케 하는 말이다 그러나 중에 있지 않으면 인이 아닌 것이고 또한 인에 있지 않으면 중이 아닌 것이다 즉 중과인은 다 같은 리(理)다
전하는 능히 순 우의 마음으로 마음을 삼고 공안의 학으로 학을 삼으면서 곧 중과인이 가히 심중에 체득되시고 제왕의 이가 몸소 행하실 것입니다 신은 성책(聖策)을 복독(伏讀)한바
『정도(正道)를 바라는 임금과 성학(聖學)을 지향(志向)하는 선비는 순 우를 사모하지 않을 수 없으며 공안을 따라 그 도를 얻은 자 누구인가 한의 명제 당의 태종은 원로를 숭배(崇拜)하고 자문하여 인의를 지행하고 영평 정관(永平 貞觀)의 착한 정사(政事)는 과연 우하(禹夏)의 정도에 부끄러움에 없겠는 가 동중서 양웅 한유(蕫仲舒.楊雄. 韓愈)의 무리는 강명절차(講明切磋)하고 도로써 자기의 임무로 하고 광정삼책(廣庭三策)으로 능히 천도와 인도의 깊이를 개발하고 법언(양웅이 지은책) 원도(한유가 지은 글)로 능히 함양체득하여 천명솔성의 뜻에 맞았는가 때를 얻어 과연 그 임금이 이제 삼왕의 성세에 이르겠는가』
하셨는데 신은 듣건대 도의 큰 근본은 천애서 나와 그 사용은 성현에 있습니다 그런고로 순 우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대강 五百年에 성인이 나왔으며 공자가 죽으니 曾子 子思 孟子가 선후 번갈아 나타나서 百余年간에 一聖 三賢이 서로 수수하여 그런 후에 요. 순. 우의 전수한 심법으로써 천도를 열고 人紀를 세운 것이 빛나 밝고 영원히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로부터 그 후에 도학이 침쇠(沈衰)하여 진유가 없었다 한당에 이르러 비록 문제 명제 태종이 현명으로서도 간혹 佛老의 학에 섞기었고 간혹 형제의 恩를 傷하였으니 차는 中道가 아니고 또한 인심(仁心)도 아니다 비록 수신(修身)을 깊이하고 대학에 나가 원로를 숭배하고 학관을 열어 현사(賢士)를 맞이하여도 그것이 중이 아니고 인이 아니었음을 어찌 하리요 그런즉 그 무엇으로 순 우 공 안 상전(舜禹孔顔相傳)의 묘도를 체득할 것이며 그 무엇으로 당우(唐虞)의 理가 부끄럽지 않겠는가. 또 동중서 양웅 한유의 무리가 서로 한당(漢唐)을 바라보고 그 근본의 정체를 완전히 유용하였으나 오히려 그 극치(極致)를 궁구(窮究)치 못하였습니다. 고로 겨우 도를 호위(護衛)하는 공(功)이 한 때에 나타나고 만세에 전도(傳道)할 책임의 임무가 없었습니다. 그 말을 보면 가히 알 것입니다
동중서 삼책(蕫仲舒 三策)에 대한 천인(天人)의 論法은 음(陰)을 굳세게 하여 양(陽)을 가리는 실책(失策)을 면치 못하여 재난(災難)과 이변(異變)에 빠질 것인즉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아닌 것을 말합니다. 양웅의 법언과 한유의 원도는 간혹 지성(知性)이 혼돈(混沌)되어 性의 善을 알 수없고 간혹은 지성의 용법이 지성의 근본이 아닌 즉 정일집중의 론이 아니다
어찌 능히 조존함양(操存涵養)의 근본을 얻겠으며 어찌 천명솔성(天命率性)의 취지에 부합(符合)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여 그 인군이 二帝三王의 성세에 이르오리까. 신은 지금주상전하를 위하여 순우상전(舜禹相傳)의 비(秘)와 공안전수(孔顔傳授)의 법으로써 말을 하겠습니다. 어찌 그 도를 알지 못하고 그 요추(要樞)를 알겠습니까. 반드시 성심(聖心)의 體得이 있어야 이 도학의 질문(質問)이 됩니다. 그러한즉 三代이후에 순 우의 도를 能得한 자는 오직 전하가 가까옵니다 대저 성학의 지향한 선비는 능히 공안의 도를 체득 한자로서 신은 송의 諸儒를 청하여 말하겠습니다. 대개 송은 天禧 明道 年代에 大儒가 속출하여 유교를 주장함으로 임무를 마쳤습니다. 이 공안의 도로써 濂溪周子에 이르러 다시 주자의 도가 나타나고 二程子에 이르러 더욱 이정자의 도가 나타나고 주자(朱子)에 이르러 크게 나타났으니 이는 공안에 의지하여 그 도를 체득한 자입니다
이제까지 학자는 그 논설을 높게 믿고 개연(慨然)히 공안의 성학으로써 학문을 한 자 또한 많이 있으니 아! 하늘이 내리신 행운의 유학이요 그 또한 지대합니다.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신에게 주신 대책에 이르기를 『송에 이르러 진유가 번갈아 일어나고 다 경전에 의하여 성현의 학을 체득하고 유용한자는 제왕의 정도가 일어났다 그 임금이 소용하지 아니함은 감히 愛惜하도다』하셨습니다 신은 진유의 일어남은 송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임금이 有用하지 않은 것을 殿下는 아까워하였습니다. 대개 제왕의 도는 스스로 맡아 쓰는 것이고 성현의 학은 스스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진유를 쓰지 않음은 불가한데 아깝게도 그 송은 등용치 아니하였습니다. 신이 성책(聖策)을 읽어보니 이르기를 『돌아보건대 대개 유치(幼穉)한데 이 중난(重難)을 받아 부하된 사명을 생각하고 날마다 경연(經筵)을 열어 도에 이르기를 강구하나 힘이 미치지 못 한다』고 하셨는데 신이 가만히 생각하여보니 전하는 영명(英明)한 자세로 조종의 대업을 계승하고 천이 명한 세상의 성현을 얻어 道의 任을 의론에 부치고 경연에 나가 높이 사부를 예우하시니 그것은 순 우 정일집중(舜 禹 精一執中)의 뜻이고 공안의 극기는 인이 되는 방법인바 강구하지 않는 것이 없이 다 행하셨습니다.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이라 한즉 전하의 구도의 실적(求道 實績)과 이(理)를 도모(圖謀)하시는 지성이시니 자신은 할 수 없는 바입니다 신이 성책을 읽어보니 이르시기를『자네들과 더불어 실학을 밝히고 선리를 일으키는 것이 나의 뜻이다 성현의 학은 무었을 요추(要樞)로 하여 설명하며 제왕의 이는 무슨 일을 근본으로 하는가. 자세히 글로 저술하기를 청한다.』하셨습니다.
신이 오직 정은 하나일 뿐이고 그 중용을 취한다고 이른 것은 진실로 제왕의 정도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서 경(敬)이 없는 즉 정일의 근본도 없으며 극기복예가 인이 되는 것은 진실로 성현전심의 학으로서 경이 없은 즉 극기복예의 주도 없는 고로 경이라는 것은 성학의 시초를 이루는 바이고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생각하건데 전하는 한 마음으로써 만사를 제정하시니 진실로 정신에 경(敬)이라는 한 자(字)를 유의하시어 거행하신다면 가히 四三王. 六五帝의 선리(善理)의 발흥(勃興)을 기대 못 하오리까 그러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성학의 요추(要樞)를 논함에 경을 근본으로 안하고 제왕의 이를 말함에 경으로 소유치 않으면 다 순차(荀且)스러운 도입니다 소신의 뜻은 이와 같을 따름입니다. 엎드려 오직 전하께 드리며 신은 삼가 봉서하나이다.
禑王14年(戊戌1388年)10月 19日
口傳 權知 典校校勘
對策
製述業文憲公徒成均館進士臣朴訔 本貫潘南縣
父奉順大夫判典校寺事右文館直提學 尙衷
祖奉翊大夫密直副使上護軍致仕 秀
曾祖進士良醞令同正 允茂
外祖宣授奉訓大夫征東行中書省左右司郞中匡靖大夫都簽議贊成事右文館大提 學監春秋館事上護軍贈諡文孝公 李穀 本韓山
殿試 謹習 對策 伏封
王若曰盖聞道之大原出於天而備於人行之爲帝王之理明之爲聖賢之學理與學非 二致也舜授禹曰惟精惟一允執厥中孔子答顔淵之問曰克己復禮爲仁何以爲之中 何以謂之仁歟願理之君志學之士莫不慕舜禹而希孔顔得其道者誰歟漢之明帝唐 之太宗拜老乞言知行仁義永平貞觀之政策無愧於虞夏之理歟蕫仲舒楊雄韓愈之 徒講明切磋以道爲己任廣庭三策果能發天人之蘊法言原道果能得操存涵養之體 合天命率性之旨歟使之得時而行果能致其君於二帝三王之盛歟逮至于宋眞儒迭 興皆因遺經以得聖賢之學如有用之者帝王之理可興也其君不能用可勝惜哉顧予 冲人膺此重艱思克負荷日開經筵講究至道力莫能逮也嘉與子大夫明實學而興善 理是予之志也聖賢之學何說爲要帝王之理何事爲本歟請詳著于篇
臣對臣聞帝王之理本於道聖賢之學本於心道之體至大而一言足以盡其妙者曰中而己心之德不一而一言足以擧其要者曰仁而己中者必仁仁者必中非二理也故聖賢之學明則帝王之理行矣伏惟 主上殿下策臣等于庭而首之以舜禹孔顔相傳之心法繼之以漢唐諸儒爲學之事實爲問顧臣淺陋何足以奉大對然臣嘗捿迹螢窓遊心蠹簡每 伔潛聖賢之淵源今幸備科目叨承 聖策敢不畢陳素蘊仰黷 聖聽臣伏讀 聖策曰蓋聞道之大原出於天而備於人行之爲帝王之理明之爲聖賢之學理與學非二致也舜授禹曰惟精惟一允執厥中孔子答顔淵之問曰克己復禮爲仁何以謂之中何以謂之仁歟臣以爲帝王之道莫大於中故堯以是授舜舜以是授禹其傳授之際必曰惟精惟一者蓋非精無以察非一無以守精以察之一以守之然後可以執中矣此帝王之理本於道者也聖賢之學莫先於仁故孔子以是授顔子其傳授之時必曰克己復禮者蓋欲爲仁當去害仁故使一心無亮髮之私以盡夫天理之本然然後可以爲仁矣曰中則大中至正之道也此以道之統體而言也曰仁則天地生物之心而人得而生者也此以心之全德而言也然未有中而不仁者也亦未有人而不中者也則中與仁皆一理也 殿下能以舜禹之心爲心孔顔之學爲學則中興仁可以得之於心而帝王之理可以行之於身也臣伏讀 聖策曰願理之君志學之士莫不慕舜禹而希孔顔得其道者誰歟漢之明帝唐之太宗拜老乞言知行仁義永平貞觀之政果無愧於虞夏之理歟蕫仲舒楊雄韓愈之徒講明切磋以道爲己任廣庭三策果能發天人之蘊法言原道果能得操存涵養之體合天命率性之旨歟使之得時而行果能致其君於二帝三王之盛歟臣聞道之大原出於天而其用在聖賢故自舜禹至孔子率五百年而聖人出孔子旣沒曾子子思孟子復先後而推明之百有餘歲之間一聖三賢更相授受然後堯舜虞所以傳授心法開天常立人紀者?然昭陳垂示罔極自是厥後道學寢微眞儒不作乞于漢唐雖以文帝明帝太宗之賢而或雜於佛老之學或傷於兄弟之恩是則非中道而亦非仁心也雖躬修玄黙臨雍拜老闢館延賢其於不中不仁何哉然則其何以得舜禹孔顔相傳之妙道歟其何以無愧於唐虞之理歟且蕫仲舒楊雄韓愈之徒相望於漢唐而其於淵源之正體用之全猶有未究其極者故僅能著衛道之功於一時而無以任傳道之責於萬世觀其言則可知矣蕫仲舒三策之對天人之論未免縱陰閉陽之失而溺於灾異則非克己復禮者之言也楊雄之法言韓愈之原道或知性之混而不知性之善或知性之用而不知性之體則非精一執中者之論也安能得操存涵養之體乎安能合天命率性之旨乎如此而能致其君於二帝三王之盛乎臣以爲今主上殿下以舜禹相傳之秘孔顔傳授之法爲言豈以不知其道而能知其要乎心有得於聖心而爲此道學之問也然則三代以後能得舜禹之道者惟
殿下近之矣若夫志學之士能得孔顔之道者則臣請以宋之諸儒而言之盖宋天禧明道之間大儒繼出以主張斯道爲己任是以孔顔之道至濂溪周子而復明周子之道至二程子而益明二程子之道至朱子而大明是希孔顔而得其道者也至于今而學者尙賴其說慨然以孔顔之學爲學者亦多有之鳴呼天之幸斯文也其亦至矣伏惟
殿下賜臣之策乃曰逮至於宋眞儒迭興皆因經傳而得聖賢之學如有用之者帝王之理可興也其君不能用可勝惜哉臣以爲眞儒之興莫宋若也而其君不能用
殿下惜之則盖以帝王之理自任而聖賢之學自學也故眞儒之不可不用而惜其宋之不能用也臣伏讀聖策曰顧予冲人膺此重艱思克負荷日開經筵講究至道力莫能逮臣竊惟
殿下以英明之姿承 祖宗之業得命世之賢寄論道之任日御經筵尊禮師傅 其於舜禹精一執中之旨孔顔克己爲仁之方靡不講究而悉行之矣猶以爲未逮則
殿下求道之實 道理之誠有所不能自己也臣伏讀 聖策曰嘉予子大夫明實學而興善理是予之志也聖賢之學何說爲要帝王之理何事爲本歟請詳著于篇焉臣謂惟精惟一允執厥中者固帝王爲理之本而非敬則無以爲精一之本克己復禮爲仁者固聖賢傳心之學而非敬則無以爲克復之主故敬者聖學所以成 始而成終者也洪惟
殿下以一心而制萬事苟留 神於敬之一宇而有以行之則可四三王六五帝善 理之與不期然而然矣然則論聖學之要而不本乎敬言帝王之理而不由於敬皆苟道也小臣之志如사斯而己矣伏惟 殿下垂察焉臣謹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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