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야첨재 해동야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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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승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30 11:47 조회1,836회 댓글0건본문
경인년(1530) 겨울에 사간 박소(朴紹)만이 안로의 간사한 죄상을 알아서 전한 조종경(趙宗敬)과 함께 탄핵하려다가 아직 일을 착수하기도 전에 허항(許沆)이 안로에게 붙었고, 또 일찍이 박소의 배척을 받은 터라 이때에 박소를 방해하기로 공모하여 박소를 옮겨서 사성으로 삼고 밀양 부사 이언적(李彦迪)으로 사간을 삼았다. 《조야첨재》
박소는 진솔하고 거짓이 없고 겉과 속이 한결같아서 보는 사람이 모두 올바른 사람이라고 하였다. 임건(任楗)과 교분이 가장 두터웠는데 경인년에 박소가 동료와 함께 안로 내쫓기를 의논하고 내일 아뢰기도 약속했다. 당시 권예가 대사간으로 채무택이 정언으로 있었는데 임건이 말하기를, “그대와 같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모두 믿을 수 있는가.” 하자, 박소가 깜짝놀랐다. 이때까지도 그는 무택이 안로와 한패인 줄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즉시 대사간의 집을 찾아가서 먼저 채무택 내쫓을 것을 의논하려고 하였으나 무택이 이미 먼저 거기와 있으면서 권예와 한 마음이 되었다. 이튿날 박소가 패하였다. 《해동야언》
○ 바야흐로 안로가 다시 조정에 들어올 적에 박소가 사간으로서 맨먼저 그의 칼날에 걸렸다. 뭇 소인들이 먼저 사람을 시켜 여러 집에 숨어 있다가 그의 출입하는 것과 뉘집에서 뉘집으로 다니는 것, 또는 누가 왕래하는가를 일일이 엿보게 하여 박소와 전한 조종경이 계사(啓辭) 한 장에 함께 탄핵을 입었다. 이언적은 밀양 부사로서 대리로 사간이 되어 부름을 받고 서울에 도착하던 날 먼저 박소를 찾았다가 엿보던 자에게 발각되어, 언적도 역시 얼마 안되어 탄핵을 당했다. 《기재잡기》
야천 선생께서 허항 채무택 간신들 때문에 큰 뜻을 접고 그먼 합천 외가 동내 까지
피신 하셔 장수(長壽)하지도 못하시고 혼백(魂魄)도 김포 선영 에 못오시고 합천
천년 유택에 잠드심 해동야언 에서 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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