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인물 | 14세 약창공葯窓公 엽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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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중 작성일16-03-31 14:30 조회1,723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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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 약창공葯窓公 엽燁] 1570(선조3)∼1623(인조1) 자는 숙야(叔夜), 호는 약창(葯窓). 증 영의정 소(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응천(應川)이고, 아버지는 참봉(參奉) 동호(東豪)이며, 어머니는 이주국(李柱國)의 딸이다. 1597년(선조 30) 문과에 급제, 1601년 정언正言이 되고, 이어 병조정랑· 직강(直講)을 역임하고 해남현감 등을 지냈다. 그 뒤 광해군 때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어 광해군의 뜻에 따라 성지(城池)을 수축해 북변의 방비를 공고히 하였다. 그리고 황해도병마절도사를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여진족의 동정을 잘 살펴 국방을 튼튼히 해 6년 동안 외침을 당하지 않았다. 광해군 아래에서 심하(深河)의 역(役)에 협력하고, 부인이 세자빈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1623년 인조반정 뒤, 그를 두려워하는 훈신들에 의해 학정의 죄로 평양 임지에서 처형되었다가 고종 때 신원되었고 문집으로는 약창유고(葯窓遺稿)가 있다. 평양 대동문에는 약창 박엽이 쓴 해서체로 ‘大同門’ 현판이 걸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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