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85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284

역사적인물

역대인물 | 13세 육우당六友堂 회무檜茂

페이지 정보

대종중 작성일16-03-31 14:29 조회1,236회 댓글0건

본문


 

[13세 육우당六友堂 회무檜茂]

 

1575(선조 8)∼1666(현종7)  

자는 중식(仲植), 호는 육우당(六友堂)· 숭정야로(崇禎野老). 형(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목사 승임(承任)이고,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녹(漉)이다. 정구(鄭逑)·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이다.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서 왕이 강화도로 몽진하자 의금부도사로 왕을 호종하였다. 소를 올려 화의를 배척하며 자강(自强)을 도모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또 소를 올려 시정時政과 서북관방의 허술함을 논하고 선정양병(選丁養兵) 선정양병選丁養兵 : 성인남자들을 선발하여 병사를 기름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출정하였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어, 통곡하며 되돌아와 두문불출하고 소나무· 전나무· 매화· 대나무· 연· 국화를 심고 애완하며 여생을 마쳤는데, 육우六友라는 호는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영천의 산천서원(山泉書院)에 배향되었다.

 

1642년 첨추공 호(濠)와 함께 반남박씨 첫 족보인  임오보(壬午譜) 제작에 참여하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