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인물 | 26세 찬익贊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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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중 작성일16-03-31 16:16 조회2,083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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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찬익贊翊] 1884~1949 별명은 정일精一· 창익昌益· 순純. 호는 남파南坡. 경기도 파주 장단 출신이다. 나라가 일제에 강점당하자 승익勝益 등 10여 명과 함께 저항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해 겨울 만주 용정龍井으로 망명하였다. 1912년에는 중국 관헌의 지원을 얻어 화룡현和龍縣 삼도구三道溝 청파동靑坡洞에 한국인 학교를 설치하고 애국사상과 자립사상을 고취하였다. 안창호安昌浩과 같이 재정적으로 궁핍해진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조직, 의연금 모금에 노력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1922년 9월에 독립지사 신규식이 죽자 동제사同渧社 이사장이 되어 한중합작 항일운동을 전개했고, 1932년 윤봉길尹奉吉의 의거로 임시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이동녕·김구金九을 도피시켰다. 1933년 5월 김구와 같이 난징 중앙군관학교南京中央軍官學校 구내에서 장개석蔣介石과 면담하여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게 하여 한국인 청년을 입교시켜 군 간부의 양성에 기여하였다. 1940년 임시정부를 충칭重慶으로 이전시키고 10월 국무위원이 되었다. 1945년에는 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단장으로 활약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항일독립운동연구'(신재홍, 신서원, 1998)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大韓民國獨立有功人物錄)'(국가보훈처, 1997) '남파박찬익전(南坡朴贊翊傳)'(을유문화사, 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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