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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물

역대인물 | 25세 충서忠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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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중 작성일16-03-31 16:13 조회1,6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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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충서忠緖]

 

1898 ~ 1934

박충서는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경부터 4시경까지 대학생들과 함께 파고다 공원∼종로거리∼대한문 앞∼남대문 등에서 만세 시위에 가담하고 4일 후인 같은 달 5일 오전 9시경에 남대문 역현 서울역 전에서 약 200여명의 군중과 더불어 "조선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등 계속적으로 적극 항일운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당시 향리에서 훈장을 하시던 부친 승혁勝赫이 왜경으로부터 강압적 권유를 받고 상경하여 열사를 대동 귀향했다.

 

박 열사는 귀향 후 즉시 "만세운동"을 계속할 의지로 인근에 거주하고 있던 삼촌 승만勝萬(당시 24세)과 친지인 안성환安聖煥(당시 32세), 전태순全泰順(당시 24세) 등과 같이 협의하기 시작하여 3월 19일 안성환의 집에 모여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격문과 일본인에게 하는 경고문 수십 통을 작성했다. 당일 오후  현장에 말을 타고 출동한 일본 유산 헌병대와 경찰에 의해 강제 진압되면서 검거되어  충서 징역 2년, 승각 징역 1년, 승만 징역 1년, 정억만 징역 1년형을 받았고 안성환, 전태순, 오인환 등 3인은 징역 3월을 받았으나 정상을 참작한다는 이유로 90대의 태형笞刑에 처하였으며, 정인섭 징역 1년, 임철모 징역 8월을 받았다.

 

충서는 만기출소 후 일제의 심한 감시 등으로 인하여 강원도 등지를 배회타가 폐결핵을 앓게 되어 귀가한 후 37세에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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