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인물 | 21세 효문공孝文公 기수綺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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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중 작성일16-03-31 15:54 조회1,341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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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효문공孝文公 기수綺壽] 1774(영조50)∼1845(헌종11) 자는 미호(眉皓), 호는 이탄재(履坦齋). 할아버지는 좌원(左源)이고, 아버지는 우부승지 종신(宗臣)이며, 어머니는 최수일(崔粹一)의 딸이다. 문예가 조숙하여 나이 15, 16세에 이미 문명이 있었다. 1795년(정조 19) 진사가 되고, 1806년(순조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16년 서장관이 되었고, 이듬해 동래부사가 되었다. 이어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824년 전라감사가 되어 부호들의 옥사(獄事)와 간범자(干犯者)들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실효를 거두었다. 이듬해 직제학으로 들어간 뒤 사간원대사간· 이조판서· 사헌부대사헌· 형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32년 광주부유수가 되었으나 이듬해 경기암행어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그러나 다시 이조판서· 한성부판윤· 예조판서 이후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 지중추부사· 판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1842년(헌종 8) 규장각제학이 되었다. 이듬해 지경연(知經筵)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서 물러나 기로소에 들어갔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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