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인물 | 17세 유곡공楡谷公 치륭致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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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중 작성일16-03-31 15:16 조회1,260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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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유곡공楡谷公 치륭致隆] 1692(숙종18)∼1766(영조42). 자는 여승(汝升) 호는 유곡(楡谷). 태흥(泰興)의 아들이다. 1726년(영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740년에 지평이 되고 정언을 거쳐, 1748년 고산도찰방겸 교양관(高山道察訪兼敎養官)이 되어 사재를 털어 폐지된 지 오래던 시사교양(試士敎養)의 제도를 다시 세워 文風을 일으켰다. 1751 장연부사로 나가 흉년으로 굶주리는 백성들의 진휼에 진력하였다. 뒤에 헌납,장령 등을 번갈아 역임하였으며, 1759년에는 그의 간언이 대간의 위신을 손상시켰다 하여 파직당하기도 하였다. 1762년 (思悼世子)의 구명을 위하여 상소하였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크게 사서 흑산도에 (圍籬安置)되어 적소에서 돌아갔다. 1777년(정조1)에 신원되고 대사간에 추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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